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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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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샘신칼럼 - "천국의 문을 열어주는 포도원 비유: 욕심과 사랑 사이의 선택" 크리스천헤럴드2023.08.13
    예수님이 마테복음 20장에서 말씀하신 포도원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씀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말씀 일 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내용은 알지만 의미는  모르는 경우가 있다. 본문 포도원 비유의 말씀이 그러한 말씀 중 하나다. 선입견 없이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할 필요가 있다.  비유란 비교를 통해 청중에게 무엇인가를 교훈하는 것이므로 무엇이 비교되는지를 살펴보고 무엇을 가르치시고자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주님은 포도원 비유를 통해 천국을 가르치시고 있다.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주님은 본문 말씀의 일차 청중과 오늘 본문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천국을 알려주시고자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천국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이 말씀의 배경은 베드로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19:27)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주님이 생각하시는 천국과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이 다르다는 것이다.주님은 천국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포도원 비유의 말씀을 하신다.주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장소도 아니요 우리가 가서 머무는 맨션도 아니며천국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통치하시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천국을 알려면 천국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는 이 비유를 통하여 포도원 주인과 먼저 온 사람이 비교가 되고, 또한 먼저 온 사람과 나중 온 사람이 비교가 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그렇다면 주님이 소개하시는 천국은 어떤 곳인가?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천국의 모습으로 천국은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먼저 온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과 같은 데나리온을 받은겟에 대한 원망에 대해 말씀으로 책망한다.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20:13-15)그렇다.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곳이다.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한다면  지금 여기서 우리는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이 소개하시는 천국은 또 어떤 곳인가?  은혜의 법칙과 행위의 법칙이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먼저 온 사람을 통해서는 행위의 법칙이, 나중 온 사람을 통해서는 은혜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세상은 철저하게 행위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지만 천국은 1시간만 일을 해도 12시간 일을 한 사람과 똑같이 받을 수 있는 은혜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임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온 사람의 마음은 원망으로 인해 마음에 천국이 없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 먼저 온 사람의 마음속에는 시기, 질투, 원망, 비난, 피해의식, 비교의식 등이 가득했다. 반면에 나중 온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은혜와 감사다.우리의 마음속은 어떠한가?  구원받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도 천국이지만, 천국은 우리가 이 땅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포도원 비유를 통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진리가 한가지 더 있다,그것은 우리의 행위가 투자인가 아니면 베푸는 것 인가 를 확인해야 한다. 투자나 베푸는 것인가는 외적으론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것이다.투자는  자기를 위한 것이요 베푸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며 투자는 자기 욕심이라는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베푸는 것은 사랑이라는 뿌리에서 맺힌 열매이다. 결국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은 욕심이 지배하면 지옥이며 사랑이 지배하면 천국이라는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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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어리버리 서목사의 낚시 전도법 - 불특정 다수에서 특정 소수로 (2) 크리스천헤럴드2023.08.13
    3) 자녀 혹은 자녀들의 교육이라는 카테고리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자녀가 있는 이들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복음의 대상이고 우리에겐 전도의 대상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과 기도가 필요한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도 프로젝트일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복음의 확신 위에 서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더욱 기도를 심고, 자녀를 말씀으로 축복하며 복음으로 그들의 인생을 세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자녀들을 통해 얼마든지 많은 사람과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음을 깨닫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자.나의 경우,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매일 아침에 만나게 돼서 서로 인사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들과 오고 가며 서로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다. 밝은 모습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하루를 기쁨으로 보내길 축복하며 헤어진다. 이런 만남은 얼마든지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나에게는 아들의 운동을 통해 만나는 여러 가정이 있다. 아이가 운동하는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은 오롯이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오고 가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해 수 있다.당신이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가지기만 하면 얼마든지 당신의 사랑이 필요한 아니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당신이 마음을 열기만 하면. 절대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말자. 사람이 그렇게 없다면 어떻게 종교 사기를 치는 이단들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포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너무 안일한 태도와 마음으로 하나님의 소원에 무관심하지 않은지 자신을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4) 가족관계라는 카테고리이 세상에 그 누구도 혼자인 사람은 없다. 부모, 형제, 친인척이 없이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를 들여다보면 분명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가족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가족들을 먼저 분류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방법이 전도 대상자 혹은 태신자를 찾는 가장 전통적이고 쉬운 방법일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가족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장소가 예루살렘일 수 있다. 우리의 복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곳인 예루살렘에서부터 전해져야 한다. 그 예루살렘은 피지컬한 지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혈육 관계에 있는 우리의 가족 중에 복음을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가족들이 존재할 수 있다. 그들이 바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자들이다.지금까지 가족들끼리 서원해진 관계 속에 있었다면 복음을 위해 구원을 위해 틀어진 관계를 다시 이어 나가야 한다. 복음이 원활하게 들어가기 위해 믿지 않는 가족들을 태신자로 품고 기도를 심어야 한다. 절대 안 되는 사람은 없다. 절대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없다. 적어도 우리가 절대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주님의 사랑과 구원이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가 찾고 찾아 태신자 리스트에 올려놓아야 한다. 주님이 안 된다고 말할 때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우리는 위의 네 가지 카테고리만으로도 적지 않은 전도 대상자(태신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방법만으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전도 대상자를 더 많이 발견하고 또 발굴하여 그들을 품고, 그들을 위해 힘써야 하므로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사람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전도는 기본적으로 성도 개개인이 하는것이지만, 교회적으로 전도하려는 성도들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교회로서의 태신자 발굴이 필요하다. 교회가 여러 가지 방법 중 단기적인 행사 혹은 외부 이벤트를 통해 태신자들을 발굴하여 기성 성도들에게 그들을 맡길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 기본적인 카테고리에 각자의 달란트와 은사를 통한 입체적인 방법을 추가하면 더 많은 사람(태신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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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신선묵 교수의 교수칼럼 - 독특성과 영성 유형 (2) 크리스천헤럴드2023.08.13
    다섯째는 활동가의 길이다. 주로 행동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그들을 인내의 한계까지 몰고가는 그런 도전적인 환경 속에서 좋아한다. 그들은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소화시킬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시도한다. 그들은 빠른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도록 촉매제 역할을 한다. 무디, 웨슬리 등과 같은 사람들로서 그들은 활동을 하고 있을 때에 끝에 다다랐을 때에 하나님을 온전히 의존할 수 밖에 없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느낀다. 이들은 영성 형성 계획을 세울 때에 이런 성향을 고려해야한다. 여섯째, 자연주의자/창조물의 길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물의 장엄함 속에 들어갈 때에 살아 움직인다. 산이나 사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본다. 창조물들과 그들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묵상한다. 이들이 영성 형성을 계획할 때에는 이런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곱째는 예배의 길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음악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CD로 예배 음악을 들으며 은혜받는다. 이들이 영성 형성 계획을 세울 때에는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상의 7가지 영성 유형을 제시하였다.우리가 이런 영성에 있어서의 여러가지 유형들을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은혜 받고 하나님을 친밀하게 느끼는 방식을 잘 이해하고 집중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가장 많이 은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 있는 방식을 이해하여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깊이 나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영적인 깊이 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고 하나님께 더욱 친밀하게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안되는 것으로 자꾸 하려고 하지말고 잘 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것이다. 남의 모습을 따라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생긴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교회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함 속에 나아가는 다양한 서로의 방식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나의 방식에 충실하고 깊이를 향하여 나아가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께 깊이 나아갈 수 있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틀리다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지만 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고 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더욱 풍성하게 경험 되어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하심 속에서 자유함을 누리게된다. 세째, 우리가 지도자의 위치에 서서 다른 사람들의 영성을 지도하고 도와줄 때에 그 사람의 독특성을 배려해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나와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친밀해지도록 우리의 모습을 그들에게 투사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자신의 독특함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내가 신학 서적을 통하여 은혜가 된다고 남에게 그것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찬양과 경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깊이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찬양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특히 영적인 문제에서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만드셨나를 의식하고 그들의 존재(Who They Are)의 관점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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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3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소통은 생존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3.08.13
    뉴스에서는 매일 치솟는 물가와 금리 인상을 말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니 그 물가를 잡겠다고 정부는 기준금리를 올리는데 정부의 의도대로 물가가 잡히지 않으니, 서민들은 살기가 너무나 어려워지고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고 국민의 원성이 높아져 간다.얼마 전 기업 발표에 의하면 미국 내 기업 중에서 타겟(Target)의 매출이 줄어들고 타겟의 경쟁 상대인 월마트(Walmart)는 매출이 올랐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그 이유는 타겟은 코로나 이후 소비자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타겟은 식료품보다 의류나 전자 제품에 더 치중했는데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의 어려움을 겪는 소비자들은 예산 부족으로 돈을 절약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월마트는 주가가 상승했지만 표적 주가는 폭락했다.결국 시대를 잘 파악하여 미리 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소비자들이 꼭 필요한 것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갖추는 것은 같은 기업 이념이었지만 그 물품이 무엇인가가 기업 매출 상승의 핵심이라는 뉴스이다.지금 이런 시대이다. 교회는 이 시대의 흐름을 분석하고 준비해야 한다. 교회의 성도들과 전도 대상자들이 날마다 끼니마다 어느 마켓에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선택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마켓의 소비자들이고 이들은 누가 조정한 것도 아닌데 모두 나에게 더 필요한 마켓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마켓의  소비자들이 교회로 온다면 왜 올까, 그들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다른 곳 보다 교회가 더 나은 이유가 무엇일까를 교회는 살펴야 한다. 그들의 이런 태도에 불쾌하게 여기고 비난하는 것은 지혜로운 모습이 아니다. 그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생존이 모든 결정과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헌금은 줄어들 수 있고 교회 봉사도 미약해질 수 있다. 교회는 지금 헌금이 늘어나는 것을 기뻐하고 교회 봉사를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할 때가 아니다. 교회는 교인들이 이런 세상에서 그들이 가진 직업을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지금은 교회에서 복음을 재발견할 때이다. 그동안 교리로만 알던 복음, 지식으로만 알던 복음을 자기 직업과 생활 안에서 실제가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를 움직이는 것이 바로 복음이며 그 복음을 사랑하고 그 복음으로 내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다시 정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이것을 모르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든 교회는 뜬구름 잡는 믿음, 개인의 회심과 교회 봉사나 사역에 대해서만 열심을 내는 것으로 자기만족에 빠져 버릴 것이다.복음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진 믿음과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차이를 채워주는 유일한 통로인 것을 체험하고 활용하는 것의 교회에서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복음이 교회 안에 갇혀있는 지식과  교리가 아니라 우리가 겪어야 하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참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는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그러므로 교회는 그렇게 기도해야 하고 그렇게 준비해야 한다. 물가지수나 기준금리의 수치로 흔들리는 믿음이 아니라 복음 수치로 세상에서 견고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이것에 교회의 생존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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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2
    [오피니언] 고 박희민목사 광복절 특집-그리스도인과 애국 (1) 크리스천헤럴드2023.08.13
    우리 민족이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생활에서 온갖 고난과 억압과 착취를 당하다가 해방된 지 76년이 되는 광복 기념 주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 아래에서 경제적 착취는 말할 것도 없고 인권이 억압당하고 유린당하고 심지어는 언어와 문화마저 말살당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끌려가서 죽었습니다. 많은 청장년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하는 혹살을 당했습니다. 어린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성폭행과 수치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송기정 선수는 마라톤에서 일 등을 하고도 가슴에 태극기를 달지 못하고 일장기를 달고 들어오는 그런 민족적 슬픔을 우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가장 불행하고 슬픈 백성이 누군지 아십니까? 나라를 잃어버린, 나라가 망한 만국 백성의 슬픔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 땅에 살지만은 우리가 두고 온 조국이 잘 살 때야 우리도 이 땅에서 사람 대접을 받습니다. 가슴을 펴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우리 민족을 보호하고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을사보호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을사보호조약을 맺은 지 10년째 되던 해 1919년 3월 우리 선조들은 잃어버린 나라와 주권을 되찾기 위해서 잃어버린 자유와 독립을 되찾기 위해서 일제히 항거하고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근데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이 차 대전이 끝나면서 연합군이 승리하게 되므로 우리가 해방의 선물을 광복의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너무 기뻐서 서로 부둥켜안고 노래하고 춤추고 뛰며 감싸고 감격했지요. 그러나 감사와 감격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남북으로 우리가 분단되고 5년 후에는 625 동난,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생명을 잃고 수많은 재산피해와 온 강토가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버리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처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GNP가 3만 불을 넘어서고 10대 경제 국가의 들어가게 되고 선진국에 진입하는 놀라운 성장과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한국 IT 산업이 아주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동차들이 세계의 하이웨이를 질주하고 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자 상품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직도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할 많은 민족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분단의 고통을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과업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일천만 가족의 고통을 위시해서 정치 경제 교육 군사 문화 어떤 분야에서 비극이 어디에서 기인되고 있느냐, 이 분단의 고통에서 시작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어요. 그런가 하면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한의 정세를 바라봐도 많은 염려스러운 일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크리찬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먼저 해방을 주시기 광복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임 오늘 본문의 법은 르헤미아는 파사 왕궁에서 임금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실은 바벨론 때 바벨론이 유다를 점령할 때 부모와 함께 포로로 사로잡혀 간 젊은이였는데 지금은 파사나라에서 큰 지위를 가지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근데 조국에서 온 몇 사람들에 의해서 조국의 슬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환란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 성이 무너져 버리고 에루살렘 성물이 불타버렸다고 하는 슬픈 소식을 듣고 그는 울며 슬퍼하고 금식하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회기하면서 하는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보면, 직접 조국으로 돌아가서 조국과 에루살렘 제건을 위해서 헌신했던 것을 우리가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참 크리스도인들은 자기 혼자만을 위해 산 사람들이 아님 대국 애족의 삶을 산 사람들 그래서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크리스찬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그런 말이 있어요. 모세의 삶을 봐도 바로 이 궁전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는 삶을 다 포기하고 자기 동족과 고난받는 길을 선택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자기 이름이 생명 책에서 치워질지라도 바라는 바라고 하나님의 큰절히 기도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 에레미야 모든 선지자들이 정말 애국애족의 삶을 산 사람들인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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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마지막처럼 사랑하세요” 크리스천헤럴드2023.07.15
    우리는 사랑을 찾아 목말라하며 살아갑니다. 누구든지 충분한 사랑을 느끼고 주고받으면 힘이솟아나고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그의 삶이 청춘이 됩니다. 이것이 놀라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합니다. 이런 사랑의 힘으로 인생이 천차만별 변화무쌍하기도 하고, 마음으로 받고 느낀  사랑의 힘으로 형편과 감정을 이기고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 짓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사랑의 힘입니다.누구나 사람들은 늘 첫사랑을 마음에 담고 그리워합니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첫사랑의 힘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뭔가 마음을 작정하고 새출발을 할 때에 혹은 결단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때에는 항상 처음으로 되돌려서 초심유복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래서 첫 사랑은 언제나 우리 기억속에 순수하고 좋은 감정으로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상쾌함과 설레임이 첫사랑에 담겨있습니다. 첫사랑은 서툴기는 하지만 기대와 소망을 품고 이루어가는 사랑입니다. 첫 사랑은 함께하는 기쁨과 마음이 하나되어 시작하는 즐거움이 생깁니다. 첫사랑은 미래에 대한 꿈도 꾸고 우리 마음을 넓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그러나 사실 사랑은 그대로입니다. 처음이든 마지막이든지 한결같습니다. 원래 사랑은 변함 없었습니다. 처음 사랑이 고귀하다면 역시 마지막 사랑도 고귀합니다. 오히려 마지막 사랑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 사랑은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마지막이라서 진지합니다. 마지막 말은 일생의 유언같아서 속임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말에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진하게 묻어 나옵니다.그래서 감정의 밀도가 더 높아져서 호흡 한번도, 미세한 표정 하나도 다 기억에 남습니다. 마지막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지도 않고 무례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의 말은 마지막 남길 그의 진실,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사랑은 서툶이 사라지고 완성도가 있고 결연하고 애잔하기도 합니다.이렇게 첫사랑도 귀하지만 마지막 사랑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마음을 다해서 상대를배려하고 관계를 맺는다면 분명히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맞습니다. 자꾸만 기억속에서 생각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맞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더 생각해서 내 가슴이 뛰고 아프다면 그것은 분명한 사랑앓이, 가슴앓이를 하는 것입니다.우리 크리스쳔들의 삶은 사랑앓이로 신음해야 합니다. 가슴앓이로 잠을 설쳐야 합니다. 그 이유는우리에게는 신실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고지순하다 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사랑에 견주어 볼 때에 야박한 듯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영생구원이 임했습니다. 우리 각자가 사는 방법과 환경이 다르지만 변함없는 사랑으로 인도해 주시는 압도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모진 세월 속에서 우리를 지금까지 견디게 하셨습니다. 더 사랑하지 못한 것이 생각나고, 미안했던 순간들이 회고되고, 간절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채로 걸러지듯이 하나님의 손 길에 잘 추스려져서 복된 인생 마무리가 되어야 합니다.오늘이 나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십시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예배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주일 예배를 준비하고 드리십시오. 오늘이 내가 드리는 마지막 기도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기도는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기도에 능력이 나타나고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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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샘신 칼럼 - 사막과 물가... 무엇을 선택하시렵니까? 크리스천헤럴드2023.06.15
    하나님의 은혜로 5년 동안 한국에서 목사로서 교회를 섬겼던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울산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온 후 처음으로 한국의 싱그러운 산과 들을 눈에 직접 담을 수 있었는데,  그 경치는 정말로 이전까지 전혀 느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수십년을 캘리포니아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에서만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비가 자주 내리지 않고, 푸른 식물이 희극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산과 나무가 비를 맞으며 푸르름을 뽐내는 모습이 정말로 신기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예레미야 17장 말씀을 보면 두 단어가 비교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막과 물가입니다. 즉 어떤 사람의 인생길은  사막에 심겨진 나무같은 인생이 있고, 어떤 사람은 물가에 심겨진 나무같은 인생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두 인생 길이 단순히 소유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어떤 사람은 많은 것을 소유했으면서도 사막에 심겨진 나무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어떤 사람은 가난하지만 물가에 심기운 나무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물가에 심기운 나무도  더위가 찾아오고 가뭄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물가에 심겨졌기에 더위와 가난이 그 사람을 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막과 물가가 소유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의미할까요? 마음입니다.다른 사람은  잘 모른다 할지라도 스스로는 자신의 마음이 사막인지 아니면 물가인지 알 것입니다.아니 이어지는 마음에 대한 말씀을 보면  스스로에게 속을 수도 있습니다.이제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과연 내 인생은 사막이었던가, 아니면  물가이었던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정직한 자기(Reflection)성찰이 없는 한  우리는 속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그러면 무엇이 우리의 인생길을  사막과 물가로 나누는 것일까요? 성경은 사막 같은 인생을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렘17:5)이라고 표현하며 물가인생은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렘17:7)이라고 표현합니다.즉 우리의 인생이 사막인가 아니면 물가인가는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이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막과 물가의 문제가 마음의 문제임을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마음의 문제라는 것은 누구를, 혹은 무엇을 사랑 하느냐의 문제입니다.신약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하나님인가 아니면 물질인가를 의미합니다.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이어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6:24) 는 말씀을 하십니다.또한  공급에 관한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공급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철저히 의존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하나님이 공급자라면 나는 받는 자입니다.  그리고 받는 자에게 나타나는 태도는 감사와 겸손입니다. 즉 우리가 진정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감사와 겸손이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반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감사와 겸손이 사라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성경이 말하는 죄란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공급처를 하나님 아닌 다른데서 찾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더 나아가 예배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인생을 예배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예배자로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누구 혹은 무엇을 예배하느냐의 문제입니다.우리의 인생길이 사막인가 물가인가는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성공하느냐 실패 하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우리 모두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진정한 공급처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존중할 때 우리의 인생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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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송경화 교수 칼럼 -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세 가지의 힘3: 경계선 크리스천헤럴드2023.07.15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충분하게 채워 줘야 하는 세 가지의 자원이 있다. 그 중 사랑과 안전감에 대해서는 지난 달에 다뤘고, 이번에는 세번째인 경계선에 대해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경계선이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과 그럴 수 없는 영역 사이의 경계를 말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허용해 주는 범위가 첫 경계선이 된다. 여기까지는 네 마음대로 해도 돼, 라는 자유와 허용을 경험하는 아이는 명확한 자기의 영역 안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고 편안하게 쉴 수 있다. 이렇게 자신만의 영역을 누리면서 자란 아이는 자신감이 넘치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란다. 반면,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허용하는 자유의 영역이 너무 좁거나 아예 없었던 아이는 스스로 뭔가를 하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위축된 성격을 형성한다. 경계선 안의 영역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경계선 자체의 안정감과 유연성도 중요하다. 어떤 부모는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들어서 수시로 아이의 경계선을 침범하곤 한다. 어린 아이가 뭘 알겠어, 하는 마음으로 아이가 싫어하고 불편해 하는 데도 불쑥 불쑥 아이의 경계선을 침범한다. 이렇게 부모가 자기의 경계선을 존중하지 않는 경험을 많이 하면서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계선을 잘 유지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함부로 해도 그걸 막아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다. 경계선을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하는 부모는 이런 식이다. 아이의 장난감을 다른 아이가 갖고 싶어할 때 아이에게 뺏어서 다른 아이에게 준다거나, 아이에게 “친구랑 사이좋게 함께 놀아야지” 하면서 경계선을 침범한다. 아이의 것은 분명 아이의 것이기 때문에 아이가 장난감을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안전하게 보호해 줘야 하는데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마는 부모이다. 또, 아이를 아프게 하는 부모,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부모 역시 경계선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부모이다. 아이의 몸은 아이의 것이므로 아이가 불편하게 느끼거나 싫어하는 스킨쉽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그게 경계선을 지켜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고 거기에 대해 전혀 잘못되었다는 의식이 없는 부모들이 경계선이 없는 부모이다. 아이가 자기만의 영역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려보고 통제력을 키워 나갈 때, 아이에게는 정신적인 힘이 솟아나게 된다. 이런 정신적인 힘, 자신감은 인생을 살면서 험난한 일들을 겪을 때 그 충격에 대한 완충작용을 해 주고 거뜬하게 장애물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네 것은 네 것, 내 것은 내 것 이라는 명확한 구별, 그리고 내가 좋은 것은 허용하지만 내가 불편하고 싫은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NO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힘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은 어린 시절 부모가 얼마나 경계선을 충분하게 존중해 주고 보호해 주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랑, 안전, 경계선의 필요가 충분히 잘 채워지면 그 아이는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감이 넘치며 정신적인 에너지가 충분한 아이로 자란다. 그러면 어떤 상처를 받거나 실패를 해도 크게 쓰러지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가지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세 가지의 힘이다. 요즈음 트라우마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사실 이전에는 성폭행이나 전쟁, 혹은 지진이나 사고 등을 당한 경우를 트라우마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한 개인이 겪는 충격스러운 일이나 큰 상처를 트라우마라고 많이들 말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트라우마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인생에 몇 번쯤은 트라우마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된다. 그런데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해서 모두가 그 트라우마 때문에 인생이 허물어지거나 오랫동안 힘든 증상들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트라우마를 겪어도 잠시 힘들어 하다가 서서히 회복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사랑, 안전감, 경계선을 충분히 채움받았던 사람들이다. 한 개인의 인생을 생각할 때 부모들이 아이의 어린 시절에 사랑, 안전감, 경계선을 충분히 채워 주는 것이 큰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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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준 비 크리스천헤럴드2023.06.30
    집으로 손님이 찾아온다. 중요한 손님인 만큼 아내는 정성을 다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집안을 정리한다. 손님이 오기 일주일 전부터 아내가 부지런히 집을 치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신경을 써서 청소를 한다. 진공청소기가 온 집안을 다니며 먼지를 빨아들인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청소는 도움을 받아서라도 해결한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유니폼을 입은 두 남자가 서있다. 카펫 샴푸하러 왔단다. 나는 그 길로 집에서 쫓겨나 두어 시간 동안 밖에서 보내야 했다. 아이들이 이번 주 많이 혼났다. 평소에 예쁘고 상냥했던 엄마는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신경이 곤두서서 아이들을 노려보며 왜 이렇게 방이 지저분하냐며 야단친다. 내가 보기엔 늘 그랬는데 아내는 마치 오늘 처음 알게 된 것처럼 기가 막혀 한다. 나도 이번 주 많이 혼났다. 세수를 하는데 왜 그렇게 물을 여기저기 다 튀면서 하냐며 잔소리를 들었다. 결혼생활 25년 동안 한 번도 세수하는 방법을 바꾼 적이 없는데 이날은 특별히 사방에 물을 많이 튀게 한 것으로 오해 받았다.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맞았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에 감도는 살벌한 분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내게도 불똥이 튈까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혼난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방 정돈 상태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뭐더라..아..그러고 보니 나도 맞았다. 내 서재와 연관이 있었던 것 같다. 손님 맞기 하루 전, 집안이 눈부시게 깨끗해 졌다. 솔직히 고백하는 건데 조금 낯설었다. 평소에 이렇게 깨끗하게 치워가며 살고 있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셋에 애완견 하나까지, 사실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그런데 오늘은 구석 구석 어디를 보아도 정리 정돈 되어있지 않은 곳이 없다. 평소와 너무 다른 모습에 익숙하지 않아서 소파에 앉을 때 쿠션이 흐트러질 까봐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나와 아이들이 달라진 집안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하고 있을 때 아내가 한마디 한다.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네” 손님 맞을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일주일 전부터 준비하며 기다렸던 손님들도 드디어 도착했다. 그 중 한 분이 집안을 잠깐 둘러보더니 이내 아내 칭찬을 한다. 주일날 교회에서 보는 모습처럼 집도 깔끔하리라 예상하였었는데 과연 그렇다는 것이다. 아내는 아니라고 웃으면서도 칭찬을 받아들이는 듯 겸연쩍게 웃는다.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밤이 되어 손님들은 모두 떠났고, 손님맞이는 그렇게 잘 마쳤다. 아내도 결과에 만족해 한다. 나와 아이들도 엄마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참으로 다행이다. 가족모두 고생은 좀 되었지만 그래도 손님 오시는 날을 미리 알아서 이렇게 준비를 잘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날은 우리가 알 수 없으니 우리의 마음의 집은 어떻게 준비해야 해야 하는가. 늘 깨어 있어 긴장을 놓지 않고 항상 준비하며 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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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확신으로 드리는 기도” 크리스천헤럴드2023.06.30
    그 중에도 말씀과 기도는 일생동안 우리 신앙을 대변해주는 단어와도 같습니다. 디모데후서4:5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증거합니다. 거룩한 말씀이 우리 영혼의양식이고 간절한 기도는 성도의 영적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이 거룩함으로 강건케되기위해서는 영혼의 양식과 호흡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강조하고 언급해도 지나치지 않을 말씀과 기도는 우리 신앙의 양대산맥과 같습니다.이 세상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에서 시작됩니다.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찬가지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으려면 확신으로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확신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신실하심과 사랑을 믿습니다. 그리고 확신하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의심도 하지 않고불안해 하지도 않습니다.그러면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내일에 대한 걱정과 염려 때문입니다. 부모와 함께 있는 어린아이는 걱정이 없습니다. 웃고 평안하고 얼굴이 밝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안 보일 때 아이는놀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불안해 하고 울음보가 터집니다. 장난감이나 놀이는 잠깐의 임시방편일뿐입니다.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이 못됩니다. 부모의 모습이나 음성을 듣기 전에는 울고 있는어린아이를 달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면 내 앞에 놓인문제가 어렵고 처한 상황이 힘들어도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확신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감당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확신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의 표현입니다.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이 홀로 던져져외롭고 처참한 인생같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사랑의 하나님이 거두어 주시고 지켜 주십니다. 결코 빈손들고 주저 앉아서 울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눈을 떼지 않으시고 살펴보시는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사랑과 은혜를 부어주시고 영원한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우리 미래를 예정과 섭리가운데 인도해 주십니다. 혹 내가 불안하고 두렵다면, 그래서 기도를 드리지못한다면 나는 지금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우리 마음이 불안하고조급해지거나 혹은 의심이 가득하면 기도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티켓팅을하고 시간에 맞춰서 자리에 앉으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것은너무나 당연하기에 의심할 수도 없습니다.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구세주이십니다.성령님은 우리 기도를 듣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드리며 흘리는 눈물과 간절함을 아십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아시고 다가와 주시고 우리의 이름과 생각과 눈물과 고통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득차면 확신에 찬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확신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 믿음의 표현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이제까지는 매일 눈물로,불안함으로, 억지 떼를 쓰는 기도를 드렸다면, 이제부터는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기도, 담대함으로확신에 찬 기도를 드리십시오. 아버지 하나님께 칭찬듣고 모두 응답받는 생애가 되시길 바랍니다. 샬롬!“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행전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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