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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샘신 목사 칼럼 - 무서운 함정

작성일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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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는 자기의 죄인됨을 인정
바울이 빠졌던 함정 “자기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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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눅18:9)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빠지는 가장 크고 무서운 함정이 있다.  이 함정은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성경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깨여 있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빠지는 함정이다. 그리고 이 함정에 빠지면 절대로 올바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힘들게 하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된다.  

그것은 윤리적으로, 교리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함정이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빠졌던 함정이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있다면 바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 빠졌던 함정이다. 이때 바울은 열심히 있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사람이다. 


 이 말은 열심히 율법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문제는 이렇게 열심히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러 다녔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증인을 서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연하게, 아니 더 나아가 자기가 하는 일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졌던 함정, 그리고 바울이 빠졌던 이 함정을 “자기 의”라고 부른다. 이 함정에 빠진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 까지도 죄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주님은 그들에게 못박히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 모릅니다”라고 기도를 한다.


 즉 이 함정에 빠지면 영적인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왜곡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마귀는 우리 모두가 이 함정에 빠지길 원하고, 이 함정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이 함정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공격한다. 


 반면에 성령님은 진리를 통해 우리를 이 함정에서 나오도록 역사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 함정에 그렇게 취약할까? 우리는 이 질문에 성경적인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음 말씀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4-15)


 성경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율법이 새겨져 있다고 증거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 지식이 없고 있다할지라도 자주 잊어버린다. 그러면 마음에 율법이 새겨져 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 모든 인간은 율법주의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혹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타락하여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나면서 율법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마음에 새긴 율법의 학습이요 체험이다. 반복적인 고발과 참소, 송사, 변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살다가 보면 그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된다. 


 문제는 이 습관은 우리가 주님을 만나도 여전히 내 몸속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만나면 “독사의 자식들아...”하면서 강하게 책망했다. 반면에 세리와 창기를 만나면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교제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보면서 다음 몇 가지를 정리할 수 있다.

 (1) 당시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이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예수님을 공격했다.

 (2) 그렇다면 예수님은 사람을 보는 관점과 기준이 달랐음을 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3) 예수님의 관점, 기준이 윤리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윤리적이었다면 바리새인과 친구가 되어야 했다.


 오늘 본문 속에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세리이다. 


 주님은 두 사람을 비교하면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십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리새인의 기도이다. 본인은 기도를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자랑이다. 우리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해 자기 의가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반면에 세리는 자기의 죄인됨을 인정한다. 세리에게는 자기 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 속에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16절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6-17)


 내가 어느 교회에 설교자로 갔다면 나를 가장 잘 대접하는 것은 내 설교를 경청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잘 대접한 것이 아니다. 반면에 세리는 비록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자기의 죄를 인정함으로 예수님을 잘 대접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 순간 순간 스스로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나는 지금 그 일을 잘 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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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신 목사 

SAM Community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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