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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영석 목사 칼럼 - 평안

작성일 :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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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안하세요?” 내가 아는 한 지인은 늘 이렇게 안부를 묻는다. 그냥 잘 지냈냐고 물어보면 특별히 어려운 일 없고, 조금 힘든 상황이 있다 하더라도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많을 테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평안하냐는 질문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평안은 내면의 안부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별탈없이 잘 지내고 부족한 것이 없을지라도 마음은 평안하지 않을 수 있다. 풍족한 환경이 우리를 편안하게 할 수 있지만 평안하게 하지는 못한다. 


 갈수록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지만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풍요로운 세상에서 스트레스, 정신 질환과 자살률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의하면 자살이 현대인의 사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에 알게 해주는 현시대의 정보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두렵고, 무섭고, 위험한 곳인지를 더 잘 알려준다. 불안한 미래와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평안을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하게 한다. 


 그 답을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평안이란 단어를 사전에서는 걱정이나 탈이 없는 상황, 무사히 잘 있는 상태, 위험이나 다툼이 없는 상황으로 정의하고 있다. 세상의 평안은 상황에 근거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평안은 조건부이며 잠정적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평안이 상황에 근거해 있고, 나는 그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평안은 제한적이다. 상황이 좋으면 누릴 수 있고, 나쁘면 잃어버리는 일시적인 평안은 여전히 불안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세상이 줄 수 있는 평안의 한계이다. 불완전한 세상이 평안의 주재이니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다. 평안의 원어인 샬롬의 뜻은 조화, 균형, 화합, 완전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같은 단어이지만 뜻이 다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상황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불완전한 세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불변하신 하나님께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재이시니 완전하신 하나님의 자질과 속성에 의거한다.


 그래서 평안은 내가 어떤 상황 속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주님 안에 있느냐는 것이다. 평안은 나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평안은 만물을 다스리시고, 모든 순간을 통제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기에 상황에 따라 요동하지 않는다. 나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된다. 


 평안은 문제가 없는 인생이 아니고, 고통과 어려움이 없는 인생도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인생이다. 평안은 복잡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묵상도, 내면 단련도, 요가도 아니다. 평안은 어려움이 없을 때만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평안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선한 것임을 믿는 것이다. 나의 모든 삶의 순간이 주님 안에 있고, 끝까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평안이다.


 순교했던 스데반은 저주하는 무리에 둘러싸여 맞아 죽는 순간에도 평안을 잃지 않았다. 그는 죽기 직전에도 자신을 돌로 친 자들의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 그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성경은 “자니라” 로 표현했다 (행 7:60) 스데반은 어떻게 죽어가는 상황에도 이처럼 침착하고 담대할 수 있었을까? 그는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5). 


 세상에 근거한 평안은 세상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영원무궁하다. 우리가 구해야 할 평안은 완전하고 영원한 주님의 평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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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목사 

choyoungsu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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