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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영석 목사 칼럼 - '틈'

작성일 :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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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며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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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아내가 반갑고, 집으로 돌아와서 기분도 좋은데 속에서 자꾸 짜증이 난다. 갑자기 아내의 운전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왠지 아내의 말투가 거슬린다. 아내의 말과 행동에서 어딘가 탐탁지 않은 부분들이 자꾸 보이고 신경이 쓰인다


조금은 긴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왔다. 아내와 떨어져 있는 동안 영상통화를 자주하며 지내서인지 거리감을 느끼지 못했고 항상 가까이 있는 듯했다.

공항에 마중 나온 아내와 반갑게 포옹을 하고 웃으며 차를 타고 집으로 출발했다. 익숙한 거리로 집으로 향하며 그간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아내가 반갑고, 집으로 돌아와서 기분도 좋은데 속에서 자꾸 짜증이 난다. 갑자기 아내의 운전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왠지 아내의 말투가 거슬린다. 아내의 말과 행동에서 어딘가 탐탁지 않은 부분들이 자꾸 보이고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반가웠던 재회는 조금씩 어색한 분위기로 바뀌었고, 우리의 대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좋은 이야기를 나눠도 모자랄 판에 싫은 소리들이 오가며 둘 다 마음이 언짢았다. 분위기를 망친 나 자신도 왜 그랬을까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내에게 짜증을 내고 잔소리를 한 것이 미안하고 후회가 됐다.

그날 저녁 내가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떨어져 있는 사이 생긴 거리 때문이었다. 같이 있을 때는 익숙해져서 잊고 있었던 서로의 차이들이 거리로 인해 생긴 틈을 통해 다시 드러나 보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에는 다시 평소처럼 더이상 아내의 습관이나 행동이 거슬리지 않았다. 떨어져 지낸 만큼 다시 서로의 차이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아내와 나는 성격과 성향이 많이 다른 사람들이다. 생각도 다르고, 대화하는 스타일도 다르다. 생각 차이와 의견 충돌로 인해 다툰 적도 있고, 오해를 한 적도 있다. 이 차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한 것일 뿐, 처음이나 지금이나 우린 변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에게 맞춰가며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많은 부부들도 그럴 것이다. 오래전 참석한 세미나에서 메인 강사가 치약을 중간부터 눌러 짜는 아내의 습관을 받아들이는데 20년이 걸렸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이것이 상대의 방식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일 것이다.

부부만이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많은 관계들이 그렇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다른 환경에서 살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성격과 습관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부부로 살고,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서이다. 서로의 좋은 점에 집중하고 이해되지 않는 다른 점들은 그냥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펜데믹으로 인해 교회에도 틈이 생겼다. 떨어져 지낸 동안 성도와 성도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함께 모여 예배 드리지 못하고 교제하지 못한 사이 힘써 주안에서 하나를 이루었던 공동체 사이에 다시 메꿔야 할 틈이 생겼다.

긴 공백을 끝내고 이제 교회로 모이고 있지만 이 틈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서로의 차이와 허물을 다시 보게 될 수 있다. 우리의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가 익숙해질 때까지 인내하고 적응해야 한다. 이런 현상을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 그런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다만 천성처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연약함과 이기심을 극복하고,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뿐이다.

이해와 사랑으로 틈을 메꾸지 않는다면 그 틈 사이로 분열이 쌓일 것이고 다시 하나되기 힘들게 된다. 교회와 틈이 너무 벌어져 떠난 사람들이 있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고 마음이 식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다르고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이해와 사랑으로 덮어주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다. 

의로우신 예수께서 먼저 죄인들을 찾아오셔서 친구가 되어 주신 것처럼 우리 또한 사랑으로 서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께서 우리 사이에 있는 막힘 담을 허시고 가깝게 하신 것처럼 우리 눈에서 대들보를 빼고 서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가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면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키는 한 몸이 되어야 한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마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27, 32)


조영석 목사

찬양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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