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목사의 피시전도법 - 전도란 무엇인가? > 오피니언

본문 바로가기

뉴스

[오피니언] 서민수 목사의 피시전도법 - 전도란 무엇인가?

작성일 : 2022-12-06

페이지 정보

본문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52:7)
c60980611aa421101f3b819de73055ef_1675808399_1813.jpg
 
 

 내가 처음 전도에 대해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전도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려야 했다. 전도의 사전적인 의미는 ‘종교를 세상에 널리 알려 그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도록 인도한다’라는 뜻이다. 내가 믿는 종교(기독교)를 알리는 것이 바로 전도다. 성도들이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믿는 생명의 도를 믿도록 인도하고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전도인 것이다. 전도는 문자 그대로 도(길)를 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길’이라 함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근본이신 예수님을 전하고 그 예수님의 길을 소개하여 그 길을 함께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듣고 들었던 전도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전도의 핵심이신 예수님과 그의 오심은 모든 이에게 복음이다. 복된 소식인 것이다. 이 복된 소식이 전도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도의 핵심인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고, 그 복음의 핵심이 바로 좋은 소식, 구원의 소식,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전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전도다.


 그런데 많은 경우 교회나 성도나 목사들이 말하는 전도는 이와는 좀 다른 개념이 더 첨부되어 있다. 항상 교회 건물과 연결하여 교회에 데려오는 것을 결국은 전도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사람을 데려다 놓은 것으로 전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려고 한다. 그런데 전도에 대한 바른 개념이 정리가 안 되면, 시작은 비슷하다 할지라도 그 끝은 상당히 다른 결과치, 아웃컴(outcome)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을 본다. 이런 맥락으로 생각하면, 결코 예수님도 전도에 성공했다고 보긴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전도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그 정리된 바른 개념 위에 구체적인 전도의 방법을 정리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매일같이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전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림도 그려보고 표도 만들어 보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도를 정리하게 되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나는 모태서부터 교회를 다니다 보니 전도에 대해서는 귀가 아프도록 듣고, 배우고, 실천하면서 자랐다. 그런데 문제는 전도를 생각하면 할수록 좋았던 기억들보다 굉장히 무섭고 부끄럽고 피하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불편함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왜 나는 전도에 대해 이리도 부정적인 감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까?’ 전도는 이미 내가 마주하거나 대면하기 힘들어 피하고 싶은 토픽(topic)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이유를 청소년기 경험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 때 교회에서 하는 노방전도를 나가게 되었다. 노방전도 중에서도 가장 무서웠던 것 중 하나는 버스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버스 안에서 껌을 판매하는 소위 껌팔이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부모가 계시지 않았기에 이런저런 모습으로 생활 전선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보육원에서 자라던 아이들은 버스에서 여러 가지 생필품을 승객들에게 파는 호객행위를 많이 했다. 나는 마치 그 보육원 아이들처럼 불편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많은 승객 앞에서 복음을 판매하는 마음으로 전도라는 것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나 뿐 아니라, 이 일을 하는 다른 학생들도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가지고 버스에 오르긴 마찬가지였다. 뭔가 죄지은 사람처럼 당황한 얼굴로 사람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수없이 외웠던 원고를 읽어 내려가야만 했다.


 그런 우리를 보며 담당 전도사님은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뿐이 아니었다. 동네 사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율동하면서 지나가는 많은 사람에게 전도했던 경험도 있다. 전도하고 있는데 학교 친구나 동네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내 의지와 다르게 부끄럽고 민망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아는 친구들의 시선을 피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해보았다. 이처럼 나는 전도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두렵고 부끄럽고 민망하기까지 한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전도해야 한다는 생각과 전도하자 하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과 전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내가 어떻게 전도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로 돌변하게 되었는지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이처럼 전도를 부정적이고 왜곡된 감정으로 받아들였던 이유는 전도에 관한 두 가지 사실(진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전도는 내가 다니는 교회 건물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도의 다양성에 대한 바른 개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의 학습된 경험치와 무지함에서 오는 왜곡된 전도의 개념이 오랜 기간 지속됐다. 심지어 목사가 되어서도 전도에 대해 여전히 불편하며, 불안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그것은 나를 얽어매고 있었다.



c60980611aa421101f3b819de73055ef_1675808418_6321.jpg 

서민수 목사

방주교회 담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