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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선묵 목사의 교수칼럼 - 영성의 기반

작성일 :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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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자아상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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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건강한 자아상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삶 가운데 이런 건강한 자아상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갖지 못하여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건강한 자아상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할 수 있을지 살펴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들은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믿을 뿐이다.


 예수님은 그의 사역의 초기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 그는 예수님을 성전의 꼭대기로 데리고가서 이렇게 도전하였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리라.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대로 너를 구원하실 것이 아니냐?” 여기에서 우리는 마귀가 두가지 측면에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 아들로서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이다. 예수님께 그것을 증명해보이라고 한다. 이런 도전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것을 증명하려고하지 않고 대신에 성경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지말고 신뢰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셨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지키실 것이라는 것은 진리였다. 그것은 진리이기에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마귀는 오늘날 동일하게 우리를 시험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이다. 그러나 수시로 마귀는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 마음에 의심을 일으키고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우리의 불안정한 자아상을 공격하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믿음을 공격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채널을 통하여 마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는 가치가 없는 존재다. 너는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없다. 너의 미래는 불행할 것이다.” 우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우리에게 도전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면 증명해 봐” 여기에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반응해야 한다. 우리의 불안전함으로부터 우리가 증명해야 한다고 압박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냥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의 부활하심을 바라보고 그의 사랑과 능력을 바라볼 뿐이다. 우리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신실하실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역의 초기 뿐만 아니라 삶의 마지막에도 동일한 시험에 직면하셨다. 사람들이 외쳤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 지금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목적, 즉 세상 죄를 지고가는 사명을 감당하는 중대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와 죽음을 앞에 두고 있기에 이 순간에 그는 약하고 공격에 노출된 순간이었다. 마귀는 이 순간에 예수님의 정체성과 하나님이 지켜주심에 대한 믿음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는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이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좋은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 그는 우리가 삶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그럴 때에 더욱 약해지고 공격에 노출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자격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가운데 신실하게 지켜주실까 ? 의심하도록 유혹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이기에 우리는 증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를 자녀삼아주시고 신실하게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 아래서 우리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살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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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묵 교수
월드미션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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