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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선묵 교수 칼럼 - “제자도(Discipleship)”

작성일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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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가 없이 자유를 허락하심
진정한 의미의 행복과 평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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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통치는 사랑과 은혜의 통치이다. 그런데 그 통치를 받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압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그의 통치로 들어올 수 있게 초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그 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의 통치하에 우리를 내어 드려야 한다.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를 따르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통치하심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삶과 말씀을 통하여 가르치셨다. 그의 가르침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셨고 우리에게 이전 방식과는 다른 삶의 방식 하나님의 통치하에서의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몸소 본을 보이셨다. 오늘도 우리 개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따르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 우리의 신앙이 항상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삶의 기준이 예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우리 삶 가운데 실제적으로 따르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우리 개인의 삶 가운데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가장 쉽게 정의한다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또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하셔서 우리의 구세주(Savior)가 되셨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셔서 주(Lord)의 자리에 앉으셨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첫째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의 저주로 부터 해방시켜주신 구세주(Savior)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둘째, 예수님을 우리의 참 주(Lord)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은 아무런 댓가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우리 삶을 그의 기준에 맞추어서 재 정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저하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 힘들게 느껴진다. 그러면 예수 믿는다는 것이 다 은혜라고 하더니 결국은 다 드려야 하는 것이네 하고 볼멘 소리를 할 수가 있다.


 이런 상태를 잘 표현해 주는 좋은 예화가 하나있다. 오래 전에 찰스 스원돌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본 것인데 아마도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발전하지 않은 때 만들어진 예화이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아직도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뉴욕에 여행을 가려고 L.A. 국제 공항에 나아갔다. 그런데 시간이 궁금해서 한 청년에게 지금 몇시냐고 물어봤다. 그랫더니 그 청년이 몇시라고 대답하면서 당신은 어디를 가느냐고 되물었다. 뉴욕을 간다고 하니까 뉴욕의 지금 시간은 몇 시이고 온도는 어떻고 날씨는 어떻고 지금 뉴욕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줄줄 정보를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신기해서 그 시계 속에서 그 모든 정보를 다 받을 수 있느냐고 묻고는 그 청년에게 그 시계를 자기에게 팔 수 없느냐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이 청년이 적절한 가격을 요구하여 팔았다. 그 시계를 구입한 사람이 좋은 보물을 찾은 느낌으로 막 가려고 할 때에 그 청년이 그 사람을 불러 세우면서 그 시계를 사용하려면 이것도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하면서 옆에 있는 이민 가방 두개를 내미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그 시계가 좋은 정보를 다 주는 것만 좋아해서 적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가려고 한 것인데 사실은 그 시계를 사용하려면 이민 가방 두개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그렇게 불편한 줄 알았으면 내가 시계를 사지 않았을 텐데 후회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이렇게 생각한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죽어서 천당가고 또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가 있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니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민 가방 두 개처럼 불편하고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결국은 한마디로 묶으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스런 감정이 든다.  이런 줄 알았으면 예수 안 믿지… 하면서 구세주로의 예수는 받아들이지만 주로써의 예수는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 쪽 자리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로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대신 담당 하시고 우리에게 죄와 저주로 부터 아무런 댓가도 요구하심이 없이 자유를 허락하셨다. 또 아무런 대가도 없이 하나님의 자녀됨의 신분도 허락해 주셨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이제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니 이제는 너희들이 내 부하가 되어서 나의 요구들을 다 들어야 한다고 말하시는 그런 의미의 주, 혹은 왕으로 생각한다면 오해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시는 것은 또 우리가 그의 다스림 안에서 살도록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구세주로서 과거의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시는 은혜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또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도록 우리를 초청해 주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과거나 미래의 일만인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삶 가운데 우리 가운데 누리도록 우리를 초청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주로써 왕으로써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를 착취하고 사용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진정한 의미의 행복과 평안으로 이끄시기 위한 진리로 초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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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묵 교수

월드미션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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