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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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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서민수 목사의 피시전도법 - 세상 마케팅에서 배우는 전도 크리스천헤럴드2023.02.14
      마케팅에서 많이 언급하는 것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좋은 제품이나 음식을 경험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것을 소개하거나 홍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개, 혹은 홍보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사람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각각 다른 방법을 선택하고 홍보한다고 한다. 한 사람의 기질과 성향을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가정 환경이나 교육 그리고 가치관 같은 여러 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성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각자가 다른 성향에따라 다른 모양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좋은 비누나 샴푸를 사용했다고 가정해 보자. 가장 간단한 소개 방법은 말로 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거나 자랑한다. 그들의 자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황홀한 경험담이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신의 경험을 자랑하며 나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 사람처럼 자신의 경험을 침을 튀겨 가면서 자랑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SNS에 자신이 경험한 제품을 자랑스럽게 사진과 함께 올릴 때가 있다. 그들은 상품에 대한 더 많고 더 자세한 내용을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이 애용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관해서도 알려고 한다. 이들 가운데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이 사용해본 제품을 구매해서 나눠주는 열성파도 있다. 참으로 적극적인 태도로 자신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얻은 기쁨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누는 인생을 산다. 대가 없이 자신의 좋았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 이것이 바로 전도다. 다른 의미나 대가를 염두하고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에게 참으로 좋았기 때문에 자랑하거나 소개한다. 이처럼 전도를 하는 데 있어, 말로 하는 게 편한 사람은 말로 하면 된다. 말로 하는 게 제일 좋고 편하다면 그냥 말로 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그들과 함께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 그것으로 전도의 방법을 삼으면 된다. “내가 쓰는 샴푸 참 좋더라”, “냄새도 좋더라”, “머릿결이 부드러워지더라” 등 자신의 경험담을 말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전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복음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진심으로 좋아야 전도할 수 있는 것이다. 전도의 시작은 자신이 자랑하고자 하는 상품(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상품에 대한 확신과 자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는 내가 만난 예수님에 대해 경험했던 부분들을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면 된다. 진심으로 경험했다면 솔직한 경험담을 말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도다. 글을 쓰는 게 편한 사람은 글로써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 된다. 요즘은 휴대폰 메신저와 같이 얼마든지 글로 소통할 수 있는 수단들이 많다. 얼굴 보기가 힘들고, 또 얼굴 보면서 나의 신앙적 경험을 말하기 힘들다면 얼마든지 글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 글이라는 방법을 통할 때 더 잘 표현하고 자신의 감정, 느낌, 기분을 더 잘 표현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방법으로 전도하면 된다. 굳이 말이 편한 사람에게 글로 하라고 할 필요가 없고, 굳이 글이 편한 사람에게 말로 하라고 할 필요가 없다. 전도라는 것이 꼭 말로 해야 하고, 글은 안되는 것이 아니다. 전도가 꼭 밖에 나가서 큰 소리로 외쳐야 하고 조용히 하면 전도가 아닌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성향, 특징, 기호를 발견하고 그 특징에 따라 맞는 방법으로 전도하면 되는 것이다.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는 바로 자신이 사용하고 경험한 바로 그 비누에 있다. 그 비누가 어땠냐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목표다. 샴푸 파는 가게나 상점에 사람을 데려다 놓는 게 목적이나 목표가 아니고, 그 상품이 얼마나 좋은가, 그 비누를 썼을 때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처럼 바로 내 행복을 전해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전도도 이와 마찬가지다.내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고 알려주는 것이 전도의 궁극적인 목표이고 목적이지, 사람들을 교회 건물 안에 데려다 놓는 것이 전도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서 어떻게 좋았는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전하는 것이 목표다. 그것이 전도다. 전도를 자꾸 어렵게 만들면 안 된다. 마치 수도원에서 엄청난 훈련을 해야 거룩한 사제가 되는 것으로 전도를 오해하면 안 된다. 성경을 사제들만의 전용으로 만드는 것처럼 전도를 특정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어려운 것으로 만들면 안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유언으로 남기지 않으셨고, 모든 성도가 감당할 수 있기에 부탁하신 것이다.서민수 목사방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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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신선묵 교수 칼럼 - “제자도(Discipleship)” 크리스천헤럴드2023.02.14
      하나님의 통치는 사랑과 은혜의 통치이다. 그런데 그 통치를 받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압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그의 통치로 들어올 수 있게 초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그 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분의 통치하에 우리를 내어 드려야 한다.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를 따르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통치하심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삶과 말씀을 통하여 가르치셨다. 그의 가르침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셨고 우리에게 이전 방식과는 다른 삶의 방식 하나님의 통치하에서의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몸소 본을 보이셨다. 오늘도 우리 개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따르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 우리의 신앙이 항상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삶의 기준이 예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우리 삶 가운데 실제적으로 따르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우리 개인의 삶 가운데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가장 쉽게 정의한다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또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하셔서 우리의 구세주(Savior)가 되셨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셔서 주(Lord)의 자리에 앉으셨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첫째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의 저주로 부터 해방시켜주신 구세주(Savior)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둘째, 예수님을 우리의 참 주(Lord)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은 아무런 댓가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우리 삶을 그의 기준에 맞추어서 재 정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저하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 힘들게 느껴진다. 그러면 예수 믿는다는 것이 다 은혜라고 하더니 결국은 다 드려야 하는 것이네 하고 볼멘 소리를 할 수가 있다. 이런 상태를 잘 표현해 주는 좋은 예화가 하나있다. 오래 전에 찰스 스원돌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본 것인데 아마도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발전하지 않은 때 만들어진 예화이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아직도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뉴욕에 여행을 가려고 L.A. 국제 공항에 나아갔다. 그런데 시간이 궁금해서 한 청년에게 지금 몇시냐고 물어봤다. 그랫더니 그 청년이 몇시라고 대답하면서 당신은 어디를 가느냐고 되물었다. 뉴욕을 간다고 하니까 뉴욕의 지금 시간은 몇 시이고 온도는 어떻고 날씨는 어떻고 지금 뉴욕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줄줄 정보를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신기해서 그 시계 속에서 그 모든 정보를 다 받을 수 있느냐고 묻고는 그 청년에게 그 시계를 자기에게 팔 수 없느냐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이 청년이 적절한 가격을 요구하여 팔았다. 그 시계를 구입한 사람이 좋은 보물을 찾은 느낌으로 막 가려고 할 때에 그 청년이 그 사람을 불러 세우면서 그 시계를 사용하려면 이것도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하면서 옆에 있는 이민 가방 두개를 내미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그 시계가 좋은 정보를 다 주는 것만 좋아해서 적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가려고 한 것인데 사실은 그 시계를 사용하려면 이민 가방 두개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그렇게 불편한 줄 알았으면 내가 시계를 사지 않았을 텐데 후회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이렇게 생각한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죽어서 천당가고 또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가 있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니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민 가방 두 개처럼 불편하고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결국은 한마디로 묶으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스런 감정이 든다.  이런 줄 알았으면 예수 안 믿지… 하면서 구세주로의 예수는 받아들이지만 주로써의 예수는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 쪽 자리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로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대신 담당 하시고 우리에게 죄와 저주로 부터 아무런 댓가도 요구하심이 없이 자유를 허락하셨다. 또 아무런 대가도 없이 하나님의 자녀됨의 신분도 허락해 주셨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이제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니 이제는 너희들이 내 부하가 되어서 나의 요구들을 다 들어야 한다고 말하시는 그런 의미의 주, 혹은 왕으로 생각한다면 오해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시는 것은 또 우리가 그의 다스림 안에서 살도록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구세주로서 과거의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시는 은혜를 베푸실 뿐만 아니라 또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도록 우리를 초청해 주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과거나 미래의 일만인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삶 가운데 우리 가운데 누리도록 우리를 초청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주로써 왕으로써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를 착취하고 사용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진정한 의미의 행복과 평안으로 이끄시기 위한 진리로 초대하는 것이다.신선묵 교수월드미션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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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샘신 목사 칼럼 - 성경적 사랑이란 크리스천헤럴드2023.02.07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사랑은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는 그 사랑의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자기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주셨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일차적으로 관계 속에서 필요한 단어이다.  관계가 없다면 믿음이라는 단어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반드시 그 대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상은 인격적인 존재이어야 한다.  억지를 부린다면 믿음이라는 단어를 자동차에도 사용할 수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인격적인 대상에게 사용하는 단어이다. 즉 믿음이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랑도 그 속성상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한다. 만일 사랑에 대상이 없거나 그 대상이 자기가 된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학교에 찾아간 어머니는 많은 학생들 가운데 자기 자식을 찾아낸다. 그 어머니의 눈길을 따라가면 그의 자식을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시선 끝에 사랑의 대상인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대상이 필요하기에 그 대상이 없으면 사랑은 대상을 찾는다. 그리고 그 대상을 잃어버리면 사랑은 고통스러워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그 대상이 필요했고, 그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 필요한 사랑의 대상이다. 그렇게 창조된 인간이 죄를 범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않기에 그렇다. 이러한 사랑의 속성을 안다면 우리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이 이해 될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이며, 그것이 왜, 그리고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랑의 특징 중 하나는 그 대상에게 자신을 주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가 소유한 것 중 일부를 주고 만족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자신, 즉 전부를 준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이나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를 주신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지 않겠느냐?”의 말씀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선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과 비교를 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의심하여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사49:14) 라고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빗대어 말씀하신다.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비슷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기에 하나님은 어머니의 사랑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설명하신다.   진정한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시간이 흐른 후에 보면 빈 껍질 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안 자식들은 그 어머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샘신 목사 SAM Community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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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송경화 교수 칼럼 - 애착6: 애착 유형과 하나님 관계 크리스천헤럴드2023.02.07
      지난 호에 혼란형 유형에 대해 알아보았다. 혼란형의 사람은 가슴 속에 큰 얼음 덩어리를 안고 있는 사람과 같다. 얼음을 안고 있으니 너무 춥다. 그래서 자기를 따뜻하게 해 줄 다른 사람을 간절히 찾고 있다. 너무 춥다고 비명을 지른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담요를 덮어준다. 그런데 가슴 속에 얼음 덩어리가 너무 커서 담요를 덮어줘도 여전히 추울 뿐 아니라 얼음 덩어리는 담요까지 차갑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 이 사람은 담요를 가져다 준 사람을 맹렬하게 비난한다. 내가 이렇게 추워 죽겠는데 두 손 놓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고,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 나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고 내가 죽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맹비난을 한다. 담요를 덮어 준 사람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황당하지만, 자기가 아끼는 사람이 이렇게 힘들어 하니 뭐라도 더 해 주려고 노력을 한다. 더 두꺼운 담요를 가져오고 오리털 파카를 입혀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슴 속 얼음 덩어리 때문에 어떤 것도 그를 따뜻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그는 점점 더 큰 소리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이게 반복이 되면, 처음에는 담요를 덮어주고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도 점점 지쳐버리고 마침내는 그 사람을 떠나버린다. 이것이 혼란형의 일반적인 인간관계 패턴이다.  자기 가슴 속에 큰 얼음 덩어리를 안고 있는 사람은 그 얼음 덩어리를 녹이지 않는 한 따뜻함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담요 가져온 사람의 잘못도 아니고, 담요 가져온 사람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가슴의 얼음은 자기 스스로 녹여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이 상황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혼란형의 사람들은 자기만 힘들고 상처받으며,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공감, 무배려, 무시, 무례하다고 불평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그들도 자기 나름대로 나를 도와주려 애쓴 것이었고, 그것이 내 마음에 와 닿지 못한 것은 그들 잘못이 아니라 내가 마음 속에 큰 얼음 덩어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애착 유형은 청소년기와 성인기의 인간 관계를 지배하는 패턴으로 굳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자기 긍정, 타인 긍정의 안정형은 다른 사람과도 쉽게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원만하고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도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신뢰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을 경험하며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 안정형에게는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기 긍정, 타인 부정의 거부 회피형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벌을 내리거나 자기를 거절하고 떠날까 봐 선뜻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냥 하나님 없이 나 혼자서 살아가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믿어도 건성으로 신앙생활을 하곤 한다. 열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했다가 나중에 하나님께 버림받을 바에는 그냥 적당히 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아도 아까울 게 없이 하는 게 낫다는 무의식적인 계산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도 언제 헤어져도 괜찮을 만큼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편하게 느낀다.  자기 부정, 타인 긍정의 불안형은 하나님께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감시하면서 내가 얼마나 악하고 추하고 연약하고 모자라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늘 하나님 앞에서 주눅이 들어 있다. 나 같은 게 어찌 감히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을까 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부족함을 보시고 나를 버리고 떠날까 봐 늘 불안해 한다. 하나님이 나보다 다른 사람들 더 사랑하고 복을 주시는 것 같아 씁쓸하고, 자신도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목숨까지도 다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 인색한 것처럼 느껴지고, 인정과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늘 있다.  자기 부정, 타인 부정의 혼란형은 하나님이 과연 나를 보호하시고 돌보시는 분인지, 나에게 보복하시고 벌 주시는 분인지 확신이 없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지만 불안해서 다가가지 못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아픈 마음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늘 우울하고 불안하고 두렵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도 간절히 하나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애처로운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애착 유형은 친밀한 인간관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불안정 애착으로 굳어진 성인이 안정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다음 호에서 이 주제에 대해 다뤄 보기로 한다. 송경화 교수월드미션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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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디아스포라의 역할 크리스천헤럴드2023.02.07
      디아스포라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은 사실 교회안이 아니라 세상 속이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도들은 자신들이 속해있는 일터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에 가장 좋은 곳이 되겠지만, 목회자들의 경우 세상속에 들어가서 디아스포라의 역할을 감당할 기회란 좀처럼 쉽게 찾아오지 않는 영역인 것이 사실이다. 감사하게도(?) 필자는 10여년 전부터 교회에서는 목회 사역을, 그리고 흔히 말하는 세상 직업을 갖고 주중에는 세상일을 풀타임으로 병행하는 사역을 해오고 있다. 지금 필자의 세상 직업 타이틀은 주방장이다. 주 5일 식당에서 일을하며 지내고 있는데, 사실 단 한번도 이 식당일이 내 사역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다시말해, 주중에 식당에서 하는 일 역시 교회 사역 못지않게 중요한 내 사역으로 여기며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식으로 일을 해야 나의 세상 직업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당연하면서도 놀랍게도 그저 내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것이 가장 복음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란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되었다.  맡은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되, 두가지를 항상 맘속에 결정하고 출근을 했다. 첫번째는 나로 인해 내가 일하는 식당이 좋아져야 하고, 두번째는 나로 인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삶이 좋아져야 한다 라는 두가지 결심이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 정말 많은 기적같은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한, 두가지만 나눠보려 한다. 미국이지만 내가 일하는 식당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인데, 사장님이 매일 식당에 나와 일을 하신다. 매일 사장님을 만날때 마다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라고. 그러던 어느날 같은 인사를 건네는 나를 잠시 멈춰 세우시고는 진지하게 물으시더라. 그런데 왜 목사님은 절더러 인사할때 늘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시죠? 라고 그래서 대답해 주었다. 사장님이 제공해 주신 일자리 덕분에 우리 모든 직원들 뿐 아니라 우리 가족들 까지 먹고 살고 있으니 사장님께 당연히 감사해야지요. 그랬더니 그분의 대답이, 사실 나는 나 자신의 부와 성공을 위해 이 가게를 경영하는 것이지 직원들 먹고사는 일엔 관심이 없었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내 입장에선 감사한 일이다 말을 해 주었고, 그런 후 몇일이 지나서 사장님이 이런 말을 나에게 했다. 내가 이제야 깨달았어요. 이 식당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교지 이자 사명인 것을요. 이제는 내 성공을 위한것 뿐 아니라, 직원들의 삶이 보다 좋아지기 위해서 이 식당을 경영해야 겠노라고. 원래도 좋은 성품의 사장님 이었지만, 그날 이후로 우리 식당의 분위기는 정말 여느 은혜 넘치는 교회 못지않은 따뜻함이 넘치는 장소가 되었고, 직원들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고 섬기는 문화가 자리 잡히는 그런 식당으로 변모 하였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정신이 번쩍 나는 순간을 경험 했는데, 아 하나님께서 나를 괜히 이곳에 보내신 것이 아니었구나, 이곳이 나의 또다른 목회지요 선교지 였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에 있었던 일 하나만 소개하고 글을 마치려 한다. 집 근처의 새로운 식당(카레 전문점)에서 일을 이어간지가 이제 넉달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전에 일했던 식당과 다른점은 새로운 식당의 동료들의 나이가 상당히 어린 젊은이 들이라는 사실. 대부분이 18~25 사이의 젊은 친구들이다. 일을 하면서 보니, 이 젊은 친구들이 끼니때가 되면 늘 카레를 조금 떠서 밥하고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왜 늘 카레만 먹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카레밖에 없는 식당인데 이것밖엔 먹을게 없어요”라고 하더라. 나보다 열살쯤 어린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가게 영업에 지장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점심, 저녁을 만들어 먹여도 되냐고. 식당 주인은 흔쾌히 당연히 된다고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앞으로 점심 저녁때 주방장님이 너희들 위해 음식을 만들어 줄거라고 말을 해 주었고, 그 첫 날 23살 된 우리 식당의 메니저가 조심스레 다가와 나에게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가게에 있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치킨 볶음밥과 차돌백이가 들어간 계란탕을 저녁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름이 Joe 라는 메니저가 차려준 밥을 먹으러 주방으로 들어왔다. 잠시 음식들을 쳐다보더니 한숫갈 뜨기 시작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석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이 아닌가. 농담삼아 한마디 건냈다. 내 음식이 눈물 흘릴만큼 그렇게 맛이 있냐고. 그랬더니 그 녀석 하는 말, “엄마가 작년 11월에 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그 이후로 아빠는 돈을 벌러 타주에 가서 일하며 살고 계시고 나는 나 혼자 식당 근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나를 위해 누군가가 밥을 차려준 것이 오늘이 처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별 생각없이 만들어 준 밥 한끼가 누군가에게 치유와 힐링이 된 순간이었다. 필자는 목회자는 설교를 잘 하고 가르치기를 잘 하고 교회를 잘 성장시켜야만 좋은 목회자 인줄 믿었었다. 하지만 세상 속에서 일을 하며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무슨 일을 하던 주님께 하듯 하면 그게 가장 바람직한 목회자의 모습이요, 성도의 모습이요, 진정한 디아스포라의 모습 이라는 사실을 일터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디아스포라 들에게 한마디만 해주고 싶다. 이제껏 해왔던 사역에 스스로 뿌듯해 하는 것은 잠시로 끝내고, 더 주지 못해 미안한 그 품은 마음은 영원히 변치 말자고 말이다. 난 성도를 만나는 주일도 행복하고, 동료를 만나는 월요일도 행복하다. 역시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에 더 큰 기쁨이 있다. 내가 줄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 장소가 교회 안이든 밖이든 말이다.이아모스 목사LA씨티교회 선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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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서민수 목사의 피시전도법 - 전도의 다양성 크리스천헤럴드2023.02.07
      내가 전도를 무섭고 두렵게 생각했던 큰 이유는 전도의 다양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전도라는 말 속에 참으로 많은 다양함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어려서부터 경험했던 길거리에서 찬양을 부르고 율동하며, 버스 안에서 외치던 것만이 다가 아니다. 그것은 전도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마치 전도라고 하면 모두가 다 노방전도를 나가야 할 것 같고 마켓 앞에서 전도지를 나눠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다. 또한 전도라고 하면 세상을 향해 외치는(proclaim)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큰 거리에서 메가폰을 통해 큰소리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친다. 물론, 전도라는 것이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도에는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고, 또 그 다양성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전도해야 한다. 많은 교회가 마켓 앞에서 전도지를 나눠준다. 그 교회는 전도지를 나누는 것을 전도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켓이나 거리에서 큰 소리로 외치거나 마켓 앞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전도지를 나누는 전도의 방법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한 전도법을 수행하는 일에는 적지않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교회가 조직적으로 전도 활동에 대해 함께 움직일 방법은 있어야한다. 그런데도 많은 성도는 이러한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효율적으로 전해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방법으로는 각양각색의 성도들을 획일화된 전도 활동으로 귀결시키는 것에는 상당한 무리수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도들도 참으로 다양한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다른 달란트와 은사를 가지고 있다.  서로가 잘할 수 있는 일의 모양이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통으로 찍어내는 듯한 전도로는 효과적으로 전도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전도의 방법이 필요하다. 각자의 기질과 은사를 따라 잘 감당할 수 있는 전도의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모든 성도에게 획일화된 전도를 제안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교회는 성도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돕고 또 방법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낚시 전도법에서는 이런 편협된 전도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리하여 남녀노소, 직업이 있건 없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관계없이 즐겁게 기쁨으로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큰 교회 든 규모가 작은 교회든 누구라도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물론, 낚시 전도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도에 대해 나처럼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목회자나 성도가 있다면 함께 실천해 보기를 제안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낚시 전도법은 어떤 형편과 상황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당장에 전도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성도가 자신이 만난 하나님, 자신을 자유케하신 주님,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아름다우심을 전하는 전도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사실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내가 만난 많은 성도들도 전도는 하고 싶고, 전도해야 하는 이유가 있음에도 전도를 실천한다는 것이 두렵고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도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낚시 전도법이 하나의 툴(tool)이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이 거룩한 부담감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는 기어 변속기와 같은 도구가 되었으면 한다.서민수 목사방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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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카톡큐티 - “나이가 들어도” 크리스천헤럴드2023.02.07
       이 땅에 한 생명이 가족들의 축복 속에 태어나서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축복된 인생을 살다가 인생을 마칠 때까지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 감사하고 감격스럽다. 기쁘다. 구원을 받은 우리가 이렇게 소중한 은혜를 몰랐다면 과연 어떤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고 또 살아가고 있을까? 등등, 모르긴해도 내 성품과 성격을 생각해 볼 때에, 세상과 사람과 물질을 나의 우상처럼 섬기면서 이웃들에게 불행하고 불편을 주는, 불쌍한 인생이 되었을 것 같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부정하고 싶어도 정말 그랬을 것만 같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영생 구원을 선물로 저에게 주신 은혜가 새삼 느껴지는 아침이다. 조상적 믿음, 모태신앙으로 당연한 삶을 살았던 천방지축 철없던 유소년 시절, 내 의지로 구세주를 붙들고 죽기까지 순종하리라 서원을 했던 패기넘치는 청소년기, 신학생으로 개척교회를 섬기며 부흥을 외치던 청년 전도사의 열정, 첫 목회지인 명동에서 설레임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첫 설교를 하던 목회의 감격,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축복 속에 가족들과 함께 목사안수를 받던 은혜의 순간, 감당하기에 벅찼던 유학생활과 이민목회의 아름다웠던 인생의 추억이 떠오른다.  어언 10년이 지나 사명을 따라 선교를 마치고, 목회를 이어가며, 펜데믹으로 그 동안 만남이 없었던 주변의 모든 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우리가 서로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반가움 속에 오랫만에 만난 지인의 머리는 희어졌고, 육체의 가시가 생겼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듣게 된다. 자녀가 먼저 속도위반을 해서 천국에 갔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덤덤하게 말씀해 주신다. 세례를 베풀고 주례를 했던 가족들은 자녀를 낳고 아이들은 키가 훌쩍 커버렸고, 그 아이들은 나를 내려다 보고, 나는 처음 보는 얼굴처럼 인사를 나눈다. 선배 목회자들은 은퇴를 하고 인생을 바쳐서 눈물로 일군 사역현장을 두고 떠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내 주변의 목회현장을 돌아본다. 가까운 가족부터, 영적교제를 나누는 성도들과 이웃들에게서 삶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누구는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는 소식이 매일 들려온다. 누구는 몸이 아파서 교회 출석을 못겠다고 한다. 매일 여러분들이 병원 진료와 수술일정, 자녀의 진로와 장래에 대한 기도요청이 끊임없이 전달된다.  그리고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면서 느끼고 보이는 것들이 있다. 펜데믹의 영향으로 만남의 기회와 주야간 삶의 지경과 행동반경이 줄어들고, 가방과 책상위에 복용해야 할 약병들과 간이 의료기구, 큼직한 돋보기가 자리한다. 나도 언제부턴가 외출할 때는 더듬거리며 서너번씩 주머니속의 소지품을 점검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챙겼건만 종일 불편함을 겪을 때가 종종 있었다. 솔직히 숨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성도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예배를 위해서 일부러 더 챙겼던 그 메모지, 예배의 내용이 담긴 USB, 그 전화기를 두고 나와서 함께 계신 분들에게 죄송했던 기억도 부지기수였다. 그 당시의 부족한 상황을 차분하게 이해해주고 고통을 견뎌주신 분들이 새삼 너무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참 귀한 분들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삶에서 내가 모르는 것들이 내가 배우고 습득하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우리 주변을 채워 나가고 있다. 그 속도감을 표현할 때 일반적으로 자기 나이 숫자와 같다고 한다. 세상은 변하고 세월지나서 우리의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는 것을 시인하게 된다. 주중에 교회 장로님과 사역으로 통화하면서 “목사님 이제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그래요”라고 말씀하실 때에 감자기 내 마음이 울컥했다. 어쩜 내 마음을     들킨것처럼 내 생각과 같은 고백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매일 중보기도하는 권사님도 ‘목사님, 우리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래요. 그전엔 안 그랬어요!”라고 말씀하신다. 갑자기 장모님 임이순 권사가 평소에 하시던 “최 목사, 정말 세월 앞에 장사없는 것 같애요” 라는 말씀이 내 귀가에 맴돈다. 그런데 정작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가 챙기지 못하는 것이 또 있다. 그렇게 함께 살고 오래 지냈어도 말이다. 인생을 걸고 평생 사랑한다고 말했던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조차 챙기지 못했던 것이 있다. 어찌보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말이다. 아내와 남편, 자녀들에 대한 속마음, 성도들의 진심, 목자의 심정,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처할지라도 주께서 축복해 주신 가정과 공동체에서, 구원받은 영혼의 기쁨을 간직하고, 서로를 돌아보며 몸은 나이들어도 영혼이 평안한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나이가 들어도 주 예수님 앞에 진실하고 변함없기를 소원삼고 기도한다. 사랑하는 분들 모두 끝까지 주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나이들기를 소망한다. 샬롬!“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최재홍 목사쉴만한 물가교회joshchoi033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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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 칼럼 - 소통은 준비다 크리스천헤럴드2023.02.06
     소통의 방식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전화기 같은 도구로 개인 간의 소통과 TV나 라디오로 하는 많은 사람들과 하는 소통이 있었다. 개인이든 단체이든 대부분은 관계나 선택에 수동적이었고 또한 개인과 단체의 소통은 구분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과 단체의 구분이 없어지고 관계나 선택에 능동적이고 능동적을 넘어서 오히려 자기 주도적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듯하다.  이미 드라마나 영화 등을 방송국에서 정해 놓고 틀어주는 것을 이리저리 채널 돌리던 시대는 지났고, 내 돈을 내고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즐기는 시대가 되었고, 금전적인 가치와 방송의 영향력은 글로벌하여 한국의 드라마가 세계적인 상을 받기도 한다. 자료를 찾을 때도 이미 출판된 책이나 신문 또는 잡지를 뒤적거리던 때가 있었고 그 이후 포털싸이트를 통하여 이미 등록된 내용을 하나하나 클릭하여 내가 원하는 자료들을 찾기도 하였다. 그러나 얼마 전 오픈AI가 개발하여 2022년 12월 1일에 테스트 버전을 공개한 챗GPT(chatGPT)는 불과 2개월 만에 매일 적극적인 사용자가 1천 2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사용하는 사람이 필요한 질문을 만들어서 제시된 내용 중에서 사용자가 필요한 내용을 찾아야 하는 다른 검색 싸이트와 달리 챗GPT는 사용하는 사람이 질문할 경우 마치 대화하듯 사용자에게 필요한 대답을 만들어 낸다. 만일 사용자가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대답을 요구하면 챗GPT는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몇 번이고 새로운 대답을 만들어 낸다.  이미 신문이나 매체에 대대적으로 기사로 다루었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니 그 내용은 놀랍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전체 목차를 구성하고 성경 인용과 학자들의 의견까지 구성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러므로 구글 회사가 긴장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투자를 한다는 소식과 기대와 염려도 함께 들려오고 있다. 교회도 이미 코비드 19를 지나면서 많은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지만 코비드 이후의 교회론과 목회적인 방향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회가 이미 만들어 놓은 시간과 콘텐츠를 교인들이 수동적으로 참여하고 관망하는 것을 여전히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는 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은 변함없는 진리이고 핵심이지만 사람들이 교회에 스스로 와서 성경을 배우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을 기다릴 수 없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진리인 성경을 배울 수 있는 콘텐츠 개발에 힘써야 한다. 교회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코스도 있겠지만 각 개인에게 적합한 코스도 만들 수 있도록 교회는 준비해야 한다. 옛날에 무엇을 하든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들 때 사용하던 내용이 아니라 도무지 움직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 자기 필요만 채우려는 사람들, 자기 주도적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따르는 제자가 되도록 교회는 준비해야 한다. 그러려면 목회자는 대규모 소통 집회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각 개인을 알고 가르칠 수 있도록 개인 소통에 더 힘써야 한다. 교회는 교회를 알고 시대를 알아야 한다. 김병학목사 주님의교회 담임kim04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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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카톡큐티 - “기도는 변함없이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3.02.01
      살아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는 것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신앙생활의 큰 기쁨이다.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삶의 현장에서 응답으로 받을 때의 영적 희열과 기쁨도 기도를 통해서 충분히 맛볼 수 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 응답이 있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응답도 없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생기는 어떤 문제나 상황이든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져 주심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보좌를 흔드는 능력이 있다.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고, 이민 교회에서 부름받아 목회하면서 진실되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는 성도들을 만나는 것은 모든 목회자의 기쁨이다. 교회의 시설 환경이나 성도의 수자와  무관하게 강력하고 뜨거운 기도의 용사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사역의 원동력은 기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모일 때마다 쉬지 않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존재하는 교회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은혜의 통로로 사용된다. 교회의 기도의 지경과 크기가 사역의 크기가 된다. 그래서 기도는 영적 호흡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기도로 호흡하며 소통하는 성도들이 많아질 때 하나님의 생명이 교회 가운데 기도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충만하게 부어져서 교회가 영적 생명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하는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한분 한분 세밀하게 만나주시고 영적 소망을 더해 주시길 간구하게 된다.  종종 믿음의 사람들도 위급한 문제에 부딪힐때, 주께 기도하기 보다는 당장 내 힘으로 할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도한다고 해도 가시적인 결과나 응답이 빨리 체감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나름 신앙생활을 오래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노력으로 급한 불부터 끄고 보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힘과 생각으로 능력으로 해결할수 있다는 자신감과 힘은 누가 허락하셨나? 지금의 내가 되도록 인도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우리 신앙생활과 사역에서 기도가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핵심이다.  지난해에 펜데믹 고통속에서 성도님들의 기도 요청을 받고 위급한 것은 금식하며 긴 시간을 함께 기도했다. 정말 긴급한 것은 매일 아침마다 모이는 중보기도팀에게 오픈하고 합심해서 간구해야만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기도제목을 처음받고서 눈물로 기도드리는 분들의 열정과 우리 주께서 불쌍히 여겨주셔서 대부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지금까지 중보기도 사역을 이어오면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고 경험하게 하신 부분이 나에게 있다. 지금은 앞이 안보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문제해결의 지름길이 열려지고 실마리가 보인다.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안개 자욱한 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저만치 멀리서 보면 안개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한 걸음씩 걸어나가면 앞이 보이고 길이 나타난다. 걸어서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보인다. 그러나 두렵고 힘들다고 포기하고 제자리 머물면 아무것도 경험할 수 없었다. 불안함과 긴장과 고통의 시간만 지속될 뿐이다. 나 자신도 동일한 그런 경험을 너무 많이 해보았다. 그러나 이젠 분명히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때에 내가 되새기는 기도에 대한 중요한 마음가짐이 있다. “나는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다”, “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하나님만 끝까지 신뢰한다”는 결심을 되새기며 주께 무릎을 꿇는다. 하나님은 나를 만드신 분이다. 내 모든 문제를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 현재의 상황과 문제를 올려드릴 때,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심을 믿어야 한다. 내 문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아무것도 아니다. 새 달에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제목마다 풍성한 응답을 허락해 주시길 예수이름으로 간구드린다.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힘이다. 믿음으로 드린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샬롬!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6) 최재홍 목사쉴만한 물가교회joshchoi033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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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Emergence of the Digital World BioMetrics (Bio-Angel Cod… 크리스천헤럴드2023.01.25
      We are Since I have knowledge of understanding I knew the first mechanical computing machine was invented in 1822 by Charles Babbage (London, England 1791-1871), but was until in1943 that was created-built the first electronic computer device; this first computer was built in a room of 1,800 square feet, big enough to put in and assemble the 50 tons of 18,000 of vacuum tubes.  However, in 1945 Alan Turing invented Computer Science which was the creation of programs that the writers got the computers to do what they wanted the electronic machines to perform.  Then after in 1970 was created the first personal computer (Desktop) for interactive individual use.  In 1983 the first laptop computer, called The Gavilan SC, was released, which was able to recognize handwriting commands using a pointing stick. Nowadays, we don’t need to use those pointing sticks anymore. But I see that all those machines, since the original one, they use programs, and commands given by people. The machines alone don’t perform any job. The evolution of human intelligence, time, research, needs, of vocabulary terms, have helped man almost make a copy of human acts, using programs that transmit the commands to move, to make noise, and to repeat words, even phrases, that have been previously recorded into the program that governs such machine. Presently, those machines that follow the commands given by the programmer are considered to have intelligence, called Artificial Intelligence (AI), but not yet their own intelligence. Artificial Intelligence in Computerized Devices  Since the beginning of humanity, man learned to learn different ways to survive using his own intelligence given by a supreme being. The evolution by years and generations, makes a man find ways to create manlike devices to manipulate at his will. Man has never had in mind to create machines to replace him. However, man, had always thought of getting help for different purposes, such as avoiding paying workers for a service that an answering machine can perform, used by businesses such as banks that take to a long questionnaire, not with the same efficiency of a front desk person that can give a response to questions from customers or clients immediately; or getting the result of a glucose check device performs, manipulated by people with knowledge of these devices; or making a withdrawal or a deposit at an Automated Teller Machine, manipulated by a person.  These machines, all of them, have a program with commands given by people. Actually, all of these devices make their functions faster than many people. However, they will never replace, in full, a worker.  Someone said that those devices have consciousness because they respond to some tactical commands, or sometimes, they respond to some voice commands but remember the computers just repeat what they were programmed to respond. I have tried sometimes to get information from some computers and I have got answers totally different from the questions asked. Why? Because computers don’t think at all, they have no brains, they have no hope, and they have no feelings like human beings do.  Every time we request a response from a computer, the device starts to search in its memory, hard drive, or sticks that have information previously entered and saved. If the information requested has not been entered previously, the information will not be found. However, almost anything you think about has been entered and saved already. Nevertheless, all of those devices with Artificial Intelligence have been created with man’s needs in mind. Nowadays, all of those devices are a big help to most businesses in different industries, such as Finance companies, Markets, Hospitals, Schools, Government offices, and many others.  Someone in the business of computerized devices has classified AI in the following types: 1. Reactive Machines have no memory, and only respond to different stimuli. The Reactive Machine type is the most basic variety of Artificial Intelligence. It merely reacts to current scenarios and cannot rely on on taught or recalled data to make decisions in the present. Reactive Machines do away with maps and other forms of pre-planning altogether and focus on live observations of the environments. Some examples of reactive machines are Spam Filters, Netflix recommendation engines, and Chess-playing supercomputers.  These machines are programmed with a predictable output based on the input they receive. They neither record past encounters or functions nor implement them in the present or similar scenarios. Example: Email spam filters. 2. Limited Memory Machines use memory to learn and improve their responses. The type of AI Limited Memory Machines consists of machine learning models that extract knowledge from previously learned information, facts stored data, or events. As distinct from reactive machines, limited memory is able to learn from the past by analyzing actions or data given to them with the purpose of building probationary knowledge. This type of AI is employed by virtual voice assistants, chatbots, self-driving cars, and several other technologies. With Artificial Intelligence penetrating our daily lives with the intention to make our lives easier it is interesting to see how quickly it is developing and evolving, allowing different industries to advance. Science fiction is gradually becoming reality with new technological developments emerging every day. This type of Limited Memory is programmed to absorb, adjust, and interpret the required data. They can complete complex tasks and appropriate past-learned data for prognostications. An example of this type: the Self-driving cars. 3. Theories of Mind Machines understand the needs of other intelligent entities. In Psychology, the Theory of Mind means that people have thoughts, feelings, and emotions that affect their behavior. Experts in Computer Science are trying to find a way to make machines with all the abilities of a human body. The theory of mind AI is the next frontier of AI where machines are programmed with decision-making abilities, like humans. Example: AI researchers are still working to develop the Theory of Mind AI. However, Sophia, a humanoid robot, can possibly be an example here. 4. Self-Aware Machines have human-like intelligence and self-awareness. This is the final type of AI where the machines are aware of themselves and perceive their internal states and others’ emotions, behaviors, and acumen. This AI is not yet developed and if it is incarnated, we will surely witness a robot with human-level consciousness and intelligence.  Today, Artificial Intelligence is being surfaced in diverse markets and is stewarded as the technological innovator of the foreseeable future. Without no doubt, man is already witnessing the enduring impact of AI in almost every technology that is including smart applications, email spam filters, self-driving cars, to Siri and Alexa devices.  AI has also been classified in three other types: 1. Artificial Narrow or weak Intelligence (ANI). It’s AI that implements a limited part of the mind. It is focused on the narrow task. In John Searle’s terms “would be useful for testing hypotheses about minds. This is not actually minds. 2.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 The AGI is the representation of generalized human cognitive abilities in software, so that, faced with an unfamiliar task. The AI system could find a solution. Depending on the field the experts define differently. Computer scientists often define human intelligence in terms of being able to achieve goals; Psychologists, on their side, often define general intelligence in terms of adaptability or survival. AGI is considered to be strong artificial intelligence. However, the broad intellectual capacities of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would exceed human capacities because of its ability to access and process huge data sets at incredible speeds. 3. Artificial Superintelligence (ASI), this type is applied to robots, where the humans and the bots work together to achieve futurist projects. The ASI is not here yet. It’s not even close. In 1950-1960 mathematicians and experts in other fields improved the algorithms and hardware. This is a dramatic advance. Despite assertions by artificial intelligence pioneers that a thinking machine comparable to the human brain was imminent, the goal proved elusive and support for the field waned. AI search went through several ups and downs until it surged again around 2012, propelled by the deep learning revolution.Computer Science, where Artificial Intelligence is one of its branches, it’s one used by computer engineers and software writers to achieve many projects to help different industries to be more efficient in time and production.  John McCarthy invented the term Artificial Intelligence in the year 1950. He said “every aspect of learning or any other feature of intelligence can in principle be so precisely described that a machine can be made to simulate it. An attempt will be made to make how to make machines use language, form abstractions, and concepts, solve kinds of problems now reserved for humans, and improve themselves.” He was not far from reality. In theory, all of his thoughts are possible and in practice, the professional experts are very close to perfection. The robots made presently are very similar to humans with the mimics of actions, except for the noisy voice that has not been perfected yet.   Pittsburgh is considered the place where the artificial intelligence idea was born. There, Carnegie Mellon University, a leader in artificial intelligence since the 1950s started to shape the future of AI in software, hardware, robotics, and machine learning. Herbert Simon and Allen Newell invented the field of AI during their tenure. Today, the Pittsburgh area is a leader in artificial intelligence smart cities, developing new technologies and initia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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