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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진유철 목사의 지상설교 -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 고린도전서 3장 15-16 크리스천헤럴드2024.02.24
    말세의 고통하는 시대라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두 가지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신앙은 내가 문제를 상대하거나 먼저 상황과 조건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낙심을 한다든가 아니면 마음의 열정을 잃어버린다고 한다면, 이유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문제 해결이 안 되거나 자기의 생각대로 상황과 조건이 바뀌어지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신앙의 갈등 속에 빠진다고 말하는 것인데 내 스스로가 강한 자가 되려는 바로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타락한 마음 때문에 그런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의 특징은, 주어가 언제나 나예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바뀌어져야 된다. 내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죠. 반대로 우리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문제를 내가 상대하려고 하지 않고 내가 상황과 조건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믿는 삶을 살아가면 주어가 점점 하나님으로 바뀌게 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막내인데도 불구하고, 홀로 아버지의 양을 칩니다. 사자와 곰과 싸울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과 조건에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위대한 찬양이 나오고 믿음이 자라나는 거지요. 다윗 스스로 언제 왕이 되고 싶어 했습니까?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는 시간 속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씩이나 다가와도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의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뀐거지요. 다윗의 가장 많은 질문은 여호와여 저들을 내 손에 붙였습니까?  저들을 치오리까? 하나님 올라가오리까? 이렇게  말들을 보면 도무지 장수 같아 보이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항상 이기는 자가 되어지고 그리고 끝까지 잘되는 사람이 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어가 되니까,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고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대적이 일어나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는 있고 하나님께는 어떤 상황 속에서 승리를 주실 수 있으니까, 다윗이 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삶을 사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이 고백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서 끝까지 승리하는 사람이 된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정말 이기는 신앙이 되기 위한 핵심은 바로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말씀한 대로 확실하게 믿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이죠. 귀에 들리는 소리도 없고요.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령님이 오늘도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나의 육체를 성전 삼아 내 안에 계신다라고 성경이 말씀했음을 자꾸 인식하는 겁니다. 생각하는 겁니다. 입술로 고백하는 겁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겁니다. 그러면 내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승리를 체험하지 못하거나 실패나 좌절을 느끼면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공통점은 바로 성령님을 확실하게 믿지 않는 거예요. 세상은 자기를 좀 더 개발함으로 승리를 얻는 것이라고 자꾸 착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것들이 내 안에 채워지므로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최고의 은혜와 능력이 바로 성령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무기를 주시거나 아니면 전략을 주시거나 아니면 엄청난 물질을 공급해 주시는 대신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딱 한마디밖에 안 했어요.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너희는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기다려라 그냥 성령을 기다려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고 결국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졌어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 하셨지요. 오직 성령이 하셔서  제자들은 정말 상황과 조건 바꾸지 않았던거예요. 하나님이 가라는 데 가고 하라는 거 하고 그 모든 일들을 다 감당하면서요 이 세상이 오늘까지 우리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까지 놀라운 승리를 만들어내게 된 줄로 믿습니다. 커다란 빙산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데 왜 부는 바람과 또는 파도에 휘둘림을 당하지 않을 까요?  물 밖에 나와 있는 부분보다도 물속에 잠겨 있는 부분이 거의 10배 가까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물 밑으로는 조류의 영향을 받지 겉에서 부는 바람이나 파도나 이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 인생도 주님이 예비하신 시간표에 따라 다시 오실 재림의 주를 향해서 가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권능과 은혜의 부분이 커져야 되고 많아져야 합니다.  우리 성령님은 하나님의 모든 것 깊은 것까지도 통단하시는 분이라고 성경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놀라운 선물 은혜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었다 하시며 죽으심과 부활하신 은혜로 영원한 구원을 받았듯이 정말 보잘 것 없고 약한데도 불구하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을 확실하게 믿고 의지할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해주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가르칠 때 성령님에 대해서 세상은 능히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에 성령님에 대해서 아주 자주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자주 그리고 정말 중요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오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근대에 성령님의 역사는 1901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00년도 휴스턴에 있는 베델 성경 학교에서 성경을 공부하던 학생들이 성경에 나와 있는 성령세례의  방언기도에 대해서 성경 그대로 믿고 우리도 체험하겠다고 생각하여 간절히 기도했어요. 방학이었던 연말에 계속 기도하고, 1901년 1월 일이 시작되는 시점에 오즈만이라는 학생이 처음으로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이 터지기 시작했지요. 결국 그곳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이 터지고 성령에 대해서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번지기 시작하면서 공동체적으로 강력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1906년 세계 기독교를 바꾼 로스앤젤레스 아주사거리에서 일어난 부흥이었습니다. 하루에 세 번 몇백 명씩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대부분이 노예 해방 이후에 처음으로 자유를 맛보면서 시골을 떠나 대도시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이주했지만 처절하게 고통스럽고 가난하고 곤고했던 흑인 성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남의 집 빨래를 손으로 해주면서 정말 몇 센트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근근 살아가는 여자들도 있었고, 일용직 근로자로 뭔가 꿈을 이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 경제적 신분적으로 아주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 거기에 더하여서 1906년도 4월 18일 날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한 역사상 최대의 재앙이라는 대지진이 일어났죠.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각심이 생깁니다. 언론들이 조롱하고 멸시합니다. 언론들이 미쳤다 이상한 사람들이라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신 사람들은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 멸시하는 자 없는 자들로 정말 하나님의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자도 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이깁니까? 아무리 강한 자라도 하나님의 강함을 어떻게 이깁니까? 아무리 고귀한 자라도 하나님이 거룩하게 한 사람을 어떻게 이깁니까?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며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승리를 만들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일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내 안에 두신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성령님의 역사를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의 그런 마음 바탕에 성령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자기를 합리화 하는 변명을 하거나 그저 편한 게 좋지 하는 이런 신앙생활 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더 뜨겁게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세요. 내가 무엇을 더 원하겠느냐 예수님 제자들에게 다른 말씀 하나도 안 하시고 성령 받기를 기다려라 성령 받아라 우리 안데 성령으로 충만한 바람이 넘쳐날 때 우리는 세상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죄에게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같이 거룩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감격 있게 신앙생활 살아가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은, 내가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상대하면서 핏대 올리는 게 아닙니다. 먼저 상황과 조건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자굴에도 들어가고 불풀무 속에도 들어가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므로 위대한 승리의 열매를 맺고 간증할 수 있는 것,  그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믿고 성경 말씀대로 믿는 거예요. 그리고 간절히 갈망하므로 성려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기쁨과 감격으로 세상을 이기는 우리모두가 되어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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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연재] 탈진을 긍정하라 6 크리스천헤럴드2024.02.10
    명품 참기름 병이 탄생했다. 한 할머니가 1920년 즈음하여 나물을 캐다가 병 한 개를 주웠다. 할머니는 병에 참기름을 담아 일본인 골동품 상인에게 1원에 팔았다. 상인은 참기름병이 조선백자임을 알고 다른 골동품상에게 60원에 팔았다. 조선백자는 1936년 경매에서 1만 4천 580원에 낙찰되고 간송 전형필이 주인이 되었다. 당시 시세로 기와집 15채에 해당했다. 참기름 병은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며 1997년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白磁 靑畵鐵彩銅彩草蟲文 甁)’ 국보로 지정됐다. 하나님은 사람들 보기에 하찮은 것을 가장 귀한 보석으로 빚으셨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리 돌이 되고 사람들의 버린 돌이 보배로운 산 돌이 된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산 소망되었다. 주님은 자기비움의 빈그릇을 명품으로 재창조한다.예수님은 이 땅에서 다양한 기적과 이적을 베 푸셨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고 쉴 새 없이 사역하며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다. 때때로 많은 군중들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어느때 바닷가에서 연속 비유설교를 하고 가버나움에서 갈리리 건너편 거라사를 가시다가 바다의 큰 광풍을 만났다. 배가 뒤집힐 상황에 배 고물에서 주무실 정도로 심히 고단했다. 그동안 신체적 탈진이 역력 했다.특히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앞에 극심한 갈등과 땀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했다. 십자가 길은 두렵고 험난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람들은 가시 면류관을 씌워 알몸을 만든 채 희롱하고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살점이 떨어지도록 매질했다.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를 향해 걷다가 피폐하게 쓰러졌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갔다.결국 골고다 십자가에 양 발과 양손에 대못을 박았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버렸는가! 하나님 아버지와 단절되는 듯한 스올의 경험이었다. 십자가는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고충과 영적 고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더 없는 수치와 모멸을 저항하지 않고 만민의 용서와 사랑을 향해 어린양처럼 인류의 죄값을 고스란히 담당했다. 예수님의 영혼육 탈진은 인성과 신성의 결정체로 승화한다. 전인적 관점의 이해가 필요하다. 인성의 예수님은 잠을 자고 휴식하며 음식을 보충해야 함을 보여주신다. 신성의 예수님은 기도와 순종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탈진을 회복하신다. 기도는 성삼위 하나님과 호흡하고 교제하며 생명력을 고수하도록 만든다. 순종은 온갖 멸시 천대를 인내하고 단번에 희생의 제물로 드리며 하나님 뜻을 이루도록 인도한다. 고난의 잔은 숭고했다. 십자가의 순종이 용서와 사랑 그리고 부활의 산소망을 주었다. 주님은 새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신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는 슬픔인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고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이 지치고 힘든 가… 깊은 암흑의 고통인가… 하찮은 인생이라고 한탄만 나오는가... 은수저도 흙 수저도 아닌 형태도 없는 존재인가… 도살당하는 양처럼 죽음의 위기인가…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의 길에도 부활의 소망을 주신다. 다시금 주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고 새사람을 재발견하자. 휴식을 취하고 체력을 강화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의 호흡을 하자. 순종으로 한 걸음 나아가 보자. 무력한 그릇일지라도 새소망을 얻고 기뻐하며 명품 인생으로 재조명될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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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박재만 목사의 지상설교 - “로드쉽(Lordship)” 골로새서 1장 21절-29절 크리스천헤럴드2024.02.09
    2024년도가 시작되면서 1월 달에 각기관들 마다 여러 이 취임식이 열리고있다.  교회협의회 33대 회장 취임이 있었고, 또  10대 장로협의회 취임식이 있었고 오늘은 우리 44대 평신도전도회연횝회 이취임식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게 됐다. 리더십이라고 하는 것은 배를 계획했던 목적지로 보내는 것을 말할 것이다. 리더도 중요하지만 팔로워도 중요하다. 리더가 아무리 중요해도 팔로워가 말을 듣지 않으면 결국 침몰한 타이타닉 호가 되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팔로우어가 잘해도 리더가 잘못되면 유라고의 풍랑을 만날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좋은 리더와 좋은 팔로워와 그 때에 맞는 시대적 상황 이 세 가지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하나님의 위대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좋은 리더십도 있지만 Lordship, 주님께서 우리를 100% 이끄는 것이 가장 큰 성공 비결을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 골로새서의 이야기는 이방인 교회이다.  처음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 크리스찬으로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이 예수 믿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은 같이 밥도 먹으면 안 되고 같이 말도 섞으면 안 되고 정말 개 취급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이방인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조건을 내놓은것이다.  이방인들이 크리스찬이 되려면 똑같이 유대인이 돼야 하니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등 조건들을 달았다. 이방인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웠다. 방향을 잃어버렸다. 그소식을 전해 들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쓴 편지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다. 말씀을 보면 ‘전에는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예수의 육체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앞에 세우셨으니’라고 골로새 교인들에게 바울은 얘기한다. 그러니까 이제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신경쓰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라고 말씀한 것이다.2024년도에 우리들이 살아갈 때에  예전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흠없는 자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서 있는 것이라 믿는다. 이 말씀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일꾼이 된 것은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 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을 이끌고 가는 것은 리더지만  100% 내가 이끌다 보면 실수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주님이 이끌어 가면 100% 성공할 줄 믿는다. 그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사명이다. 각자 교회에는 사명이 있고 각 기관에도 사명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사명속에 공통분모가 있어야 된다.  각자의 태도와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빛과 소금되는 것인데 진정한 로드십은 주님이 왕 되시기 때문에 리더들이 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을 돋보이게 하며 이웃을, 다른 사람들을 돋보이도록 일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섬김이고 그것이 바로 신앙이 아닐까. 이제 그러기 위해서 한 가지가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24절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라고 기록됐다. 고난을 육체에 채워라… 아니 육체에 복을 채워도 부족할 판에 무슨 고난을 채울까. 말로는 하나님을 돋보이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돋보이고 싶고 내가 조금 더 얼굴이 나타나길 원하는 마음이 있다. 이게 바로 육의 생각이다. 고난을 육체에 채운다. 육체를 파괴하는 것은 고난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육체가 왜 무너져야 될까?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하셨고 영의 생각은 생명이라 하셨다. 육체가 무너져야 되는 이유가 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그 능력은 내 속에 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그 영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능력이 드러나려면 막고 있는 어떤 것이 깨어져야 한다.  바로 육체라고 하는 것이다. 육체가 매맞고 육체가 깨어져야지만, 마치 강낭콩의 껍데기가 벗겨져야지만 싹이 올라오는 것처럼 육체가 깨어져야지만 능력의 생명이 올라온다. 고난이 와야지만 인간은 깨어진다. 깨어져야지만 그의 능력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기록했다. 왜? 내 육체가 막고 있는 이상 내 속에 있는 생명 역사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내 육체가 막고 있는 이상 내 속에 있는 주님의 능력이 드러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육이 깨어지지 않는 한  주님의 리더십이 드러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2024년도가 시작하지만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시길 바란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기기억해야한다. 그 고난은, 끊임없이 우리의 육체를 깨뜨리는 것이다.내 생각을 깨뜨려 무너뜨리는 것이다. 하나님 생각을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 믿는 것이다. 신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끊임없이 육체에서 영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이다. 우린 때때로 내가 잘 되면 하나님 가까이 있는 것 같고 내가 잘 안 되면 하나님이 너무 멀리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모든 기준이 무엇인가? 내가 중심이 되었을때 그렇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하여 문제를 볼 수 있기 바란다. 고난이 온다고 사람들이 다 물러 서는 것은 아니다. 높은 파도앞에 섰을 때 누구는 빠져 죽지만 누구는 거기서  서핑을 하기도 한다. 믿음의 차이다. 파도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몸에 ,내 육체 가운데 고난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면 올수록 그렇구나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더 풀어지려고 하는구나 라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때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딱 두 가지 날만 있다고 한다. 투데이(today)와 댓데이(That Day!)만 있다고 한다. 바로 오늘과 그날이다. 그날은 무엇인가? 바로 주님 앞에 설 그 날이다.  어떤 자리에서도 자기의 이름이 많이 불려지면 불려질수록 부담스러워 해야 한다.  결코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만 드러나고 우리의 이름은 감춰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이다. 내 이름이 많이 불려지면 불려질수록 불법을 행할 간차가 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살겠는가?세상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 남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죽어서 예수님만 남기면 된다.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에 고난을 주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이름 내는 거 좋아하고 줄 서는 거 좋아했고 겁도 없이 이민 교회를 시작해서 엄청나게 깨졌다. 그 고난을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서 많이 몸부림치고 흔들리면서 깨닫게 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참 리더는, 크리스찬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돋보이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육체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자. 육체 고난을 기뻐하자.  고난이 결국은 내 안에 있는 능력이 드러나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이런 태도로 우리 모두 한 해 동안에 사역하고 섬긴다면  놀란 역사가 일어나게될 줄로 믿는다.  (연합회 이취임예배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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