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16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뉴스

  • 59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 칼럼 - 믿음의 전성기 크리스천헤럴드2022.09.08
      월드컵이 돌아올 때마다 2002년 월드컵의 기억을 떠 올리게 된다. 2002년은 한국축구의 역사를 새로 쓴 해이다. 이때 월드컵을 본 사람들에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2002년은 단연 한국축구의 리즈 시절이다. 한국 축구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렸고 실력과 랭킹이 절정에 올랐던, 한국축구의 가장 빛나고 화려했던 순간이다. 처음으로 4강에 올랐던 날의 환희와 희열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리즈 시절” 이란 말은 축구에서 유래되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 선수가 축구 클럽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때를 이르던 말에서 비롯됐다. 소위 가장 잘 나가던 전성기를 가리켜 리즈 시절이라 부른다. 우리 모두 리즈 시절, 즉 전성기가 있다.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있다. 가장 멋지고 예뻤던 시절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 특별한 때를 회상하며 자신의 리즈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를 잊지 못해 사람들에게 흘러간 옛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자신도 모르게 꼰대처럼 라떼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순간들이 있다. 신앙도 그렇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헌신이 가장 깊고 영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던 때가 있다. 많은 열매를 맺었을 때가 있다.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 때이다. 소위 신앙의 리즈 시절이다. 그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니 지나갔어도 잊지 못할 소중한 믿음의 전성기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명함에 직위, 학위, 경력을 넘어 심지어 40일 금식한 특별한 성취를 기록해둔 경우도 있다. 모두 기념하고 자랑할 만한 업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직함에 대한 미련이, 리즈 시절의 그리움이 인생의 제2 라운드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전성기에 대한 향수와 집착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며, 리즈 시절 속에 사는 이들에게 명함 뒤에 숨지 말라고 충고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은퇴한 많은 남자들은 명함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화려하고 성공했던 때의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원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은퇴 이후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그 사람이 가장 잘 나갔을 때, 그때의 직함으로 불러 주는 것을 예의로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은퇴 전에 가장 높은 지위의 직함으로 불리곤 한다. 하지만 지나간 영광은 추억으로만 남겨 두어야 한다. 화려했던 과거가 지금의 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오늘이 존재하는 이유가 과거의 결과이지만, 오늘을 사는 목적이 과거에 있지 않다. 지금 나의 모습을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 인생의 전성기가 지났어도 여전히 하루 하루를 가치 있게 살아내서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 뒤를 돌아보기 보다는 앞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한번 뿐인 소중한 기회이다. 이 기회를 허비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업적이 오늘의 열심을 대신할 수는 없다. 어제 내가 했던 일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오늘 내가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늘을 바로 사는 자세일 것이다.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지나간 이야기만을 하는 사람보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귀를 기울이게 된다. 2002년 이미 목표를 달성하고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고 말한 히딩크 감독처럼 아직도 이루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에게 도전을 받는다.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고 계신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게 맡겨진 일을 해야 한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직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것에 집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나의 과거가 아니라 나의 지금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지난 라떼의 신앙고백이 아니다. 오늘 나의 믿음의 고백과 선택이다. 지금 나의 믿음이다. 세상에서는 나의 전성기가 지났을지 모르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지금이 나의 전성기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신앙으로는 지금이 나의 리즈 시절이어야 한다.“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
    Read More
  • 58
    [오피니언] 서민수 목사의 FISH 전도법 크리스천헤럴드2022.09.08
    들어가는 이야기 첫번째 “줄탁동시” 난 평생 교회 안에서 성도로 살았다. 어려서부터 전도에 대해서 부척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런 나에게 전도, 하면 부정적이고 두려운 감정부터 올라왔다. 왜 그럴까? 왜 그토록 오랜 세월 교회를 다니고 전도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도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떠나지 않을까? 더군다나 목사가 되었는데도 전도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전략이 없는 스스로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수년 전, 장로교단 목사 고시를 보고 면접을 하게 되었다. 그 때, 면접관 목사님께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서 전도사는 지금까지 몇 명이나 전도했소?”  나는 애둘러서 대답은 했지만, 그 때 그 충격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질문하신 목사님의 의도는 분명했을 것이다. 목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평소에 전도했는지, 또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전도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결단, 그리고 목표가 있는지를 묻고자 하셨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목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묻지 않으실까? 세상에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느냐? 교회도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교회가 얼마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쓰고 애썼는지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어느 모임에서 각자의 교회가 더 좋다고 자랑하는 분들을 본 적이 있다. 그 분들의 말에 따르면 음식이 좋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좋은 교회라는 기준이었다.  물론 그 분들의 교회자랑에 대한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교회는 분명 영혼을 살리는 교회일 것이다. 영혼 구원에 힘쓰는 교회일 것이다. 영혼 구원에 대한 분명한 생각과 전략과 실천이 있는 교회일 것이다.  나도 한 때, 전도라 하는 것이 그저 사람을 전도해서 내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 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가지 제약이 따랐고, 그러한 문제로 인해 전도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 온 것이다.  이러한 불편한 마음은 한국에서 온 전도에 미친 목사의 세미나를 들음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몇가지 동의되지 않는 부분들로 인해 전도에 대한 나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이 생각들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 전도에 대해 정리하게 했으며  결국 그 생각과 상황들이 FISH전도법을 만들어 내는 배경이 되었다.  “자극의 시작은 가까운 곳에서” 내 아들은 어려서부터 축구를 했고 엘리트 코스를 섭렵했다. 운동선수로 프로가 되기까지 어려서부터 해야 할 것이 참 많았다.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는 일이 마치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이 어렵다는 것을 다들이나 나나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몇십 년을 기본기는 물론이고 수준 높은 전술적 훈련을 병행하며 반복했음에도 프로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또래의 많은 선수가 아들과 함께 비슷한 레벨로 시작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그만큼 운동선수의 길은 험했고, 더 나아가 프로가 되는 길은 더더욱 험난했다.  어디 운동분야에서만 이런 일이 있겠는가? 신앙생활은 어떤가? 신앙생활도 몇십 년을 했다면 프로는 아니어도 적어도 프로와 견줄만한 수준에 올라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 모습을 보니 직업적인 사역자 정도는 되겠지만 어느 모로 보아도 프로 목회자, 프로 제자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아들은 하루에도 수 십번 아버지인 나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듣게 된다. “우유 마셔사, 몸을 잘 풀어라, 열심히 운동해라, 약 목으라,”등. 이 모든 요구와 부탁은 아들이 좋은 선수가 되고 더 나아가 장차 프로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일들이다. 목표는 정확했다. 프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데 만약 수만 가지나 되는 프로가 되기 위한 실천 사항들을 내가 죽기 전에 아들에게 한마디 유언으로 정리하여 남긴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마지막 말은 “프로가 돼라”일 것이다. 이 한마디 말이 가진 의미는 모두의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이 프로가 돼라는 말 안에는 평소 일상에서 아들이 해야 할 모든 것들이 포함 될 것이다. 프로가 되기 위해 아들은 매일 잘 먹어야 하고, 열심히 운동해야 하고, 또 잘 쉬어야 한다. 프로가 되기 위해 평소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수많은 사항을 매일 반복해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평소 아들의 귀가 아프도록 강조했던 그 모든 일상의 행동들이 “프로가 돼라”라는 말에 함축된 것이다. 사실 운동선수에게 프로는 최종적인 목표이자 목적이다, 모든 운동선수는 포르라는 레벨을 향해 열심히 달린다. 프로 레빌은 운동선수로서 최고의 단계다. 프로가 되면 그동안 힘들게 운동했던 시간과 흘린 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에게 있어 가장 높은 레벨은 바로 제자가 되는 것이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 많은 훈련에 관해서는 성경 곡곳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성도로 살면서 구약과 신약을 어려서부터 읽었다. 그리고 성도로 살면서 해야 할 것 많이 있음을 어려서부터 깨달았다. 이처럼 많은 가르침과 교훈< 그리고 지켜야 할 것들이 방대한데 그렇다면 성도로 살면서 가장 주용하게 여기고 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는 목사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엇이라 여기며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얻은 대답이 바로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서민수목사필리핀 마닐라 Arellano University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미국 버지니아주 Liberty University에서 목회 상담학, Golden Gate Baptist Th. Seminary에서 목회학을 전공 한 후 현재 오렌지카운티에서 방주교회를 개척, 목회하고 있다 
    Read More
  • 57
    [오피니언] [기고문]불교계의 신안군에 대한 ‘종교편향’ 공격 지나치다 크리스천헤럴드2022.09.08
     불교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신안군이 추진하고 있는 관광문화사업을 ‘종교편향’이라며 문제를 삼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와 종교평화위원회, 그리고 영광 불갑사 주지 등은 지난 8월 2일 김대현 문체부 종무실과 종무관들과 신안군을 방문해 박우량 신안군수를 만나 관광문화 활성화를 위한 사업들에 대해 불교계의 시각에서 문제를 삼았다.  불교계는 신안군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된 ‘천사섬’(1004)이라는 용어를 문제 삼으면서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천사대교’ 명칭을 종교편향이라며 조그마한 ‘천사상’ 예술품까지 종교편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런데 신안군이 ‘천사섬’이라고 명명한 것은 1026개의 섬 중에 물이 차면 잠기는 섬들을 제외한 나머지 1004개 섬을 일컫는 말이다. ‘천사섬’과 ‘천사상’을 기독교와 연관 지어 ‘종교편향’으로 몰고 간 것은 옹졸하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신안군은 깨끗한 청정의 섬 이미지를 갖고 있다. 증도는 지난 2010년 2월 10일 우리나라 최초로 금연의 섬으로 선포가 됐다. 증도로 들어오는 선착장 입구에는 금연의 섬 조형물을 설치하고 담배물품 보관함을 운영하면서 건강의 섬‧ 청정의 섬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또한 증도에는 낙도의 전도자로 6.25 때 증동리교회를 사역하다가 그 앞 해변 백사장에서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를 기리는 순교기념관을 지어 지난 2013년 5월 개관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지 않고 성결교단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어 매년 10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다. 문준경 전도사는 단순히 섬들을 순회하면서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일만 한 것이 아니라 밥을 굶는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역할을 했던 분이다.마을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섬긴 그분의 삶에 영향을 받은 신안군 지도읍 봉리 출생의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는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이라는 ‘쌍손선교운동’ 일명 ‘대신거지운동’을 주창하시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운동에 앞장을 섰다.불교계는 또한 증도면 병풍리·기점도·소악도 노두길을 중심으로 조성하여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는 ’섬티아고‘(섬 순례길 지칭) 순례길과 작은 기도처를 종교편향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계의 주장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주장인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다. 기점·소악도 섬티아고(순례길)는 비기독교인들도 즐겨 찾는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박우량 군수는 “우리 지역이 어렵고 힘드니까 관광차원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면서 인구 180명의 병풍도에 12개의 작은 순례자 교회당(집)을 지어 ‘순례자의 섬’을 만들었다.”며 “물이 들면 5개의 섬으로 분리가 되고 물이 빠지면 한 개의 섬이 된다. 처음에는 관광객들에게 물때를 알려줬다. 지금은 물때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면 음식점도 없는 바닷가에서 3~4 시간씩 노두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간다. 작년에 5만3,000여 명이 다녀갔다. 인구 비례로 보면 어마어마한 숫자”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안군은 전국 226개 지자체 중 재정자립도 224~225등이다. 더욱이 고령화율이 전남 4위이고, 인구소멸지수 고위험군 8위에 있어 인구소멸 위기 지역이다. 우리 지역이 관광문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우리 지역이 살아나야 하고, 지역주민이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정종교단체에서는 이를 두고 편향적이라고 지적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민선지방자치는 무슨 사업이든 지역주민의 동의와 지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신안군의 관광문화사업은 군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고 소득증대를 가져오는 성과가 있기 때문에 지역민들이 동의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 판단은 투표권을 가진 군민의 몫으로 이것을 특정종교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논리다. 불교계가 끊임없이 주장해 온 ‘종교편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부의 인사와 정책 그리고 예산 지원에 있어서 특정 종교에 과도하게 편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공직자가 예배와 기도회에 참석해 축사와 격려사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본인의 ‘믿음고백’ 차원이지 종교편향이 아니다. 참고로,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정보공개를 통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정부가 지원한 종교별 지원예산 내역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불교계로 지원된 금액은 5912억원, 천주교 4472억원이었으며 기독교 계로는 1732억 원 규모의 예산이 지원됐다. 교세가 가장 큰 기독교가 가장 적은 예산을 지원받은 것으로 이것이 바로 종교편향지원이며  마땅히 시정되어야 할 종교차별인 것이다.한국 교회는 그동안 불교계에 대한 종교편향 주장을 자제해왔다.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전통문화 체험’이라는 목적으로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불교 의식’을 가르치는 것도 사월 초파일에 서울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개최하는 대규모 ‘연등제’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또한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의 혈세로 폐사지에 절을 복원하고, 사찰을 개보수하는 것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 자칫 종교간 갈등으로 국민화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계가 더 이상 ‘종교편향’이라는 날카로운 검(劒)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국민화합을 위한 종교의 역할에 앞장서 줄 것을 오히려 기대하는 바이다.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사무총장) 뉴스파워 제공
    Read More
  • 56
    [오피니언] 지상설교 - 박희민 목사편 - 인류문명은 어디로? (2) 크리스천헤럴드2022.08.25
    여러분! 자연과 잘어울리세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세요. 그럼 나도 참멋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4.에너지 문제이다 인류는 매년 석유 100억톤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인류문화는 마치 에너지 소비 중독증에 걸린 문화와도 같다. 석유는 앞으로 30-40년이면 고갈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석유가 공해와 오염에 가장 큰 원인이 되고있다. 전기는 그래도 크린 에너지에 속한다. 태양에너지도 마찬가지로 깨끗한 에너지이다. 그러나 밀도가 약해서 공장은 못 돌린다. 가정이나, 학교, 그리고 교회에서는 그래도 이용될 수 있다. 원자핵을 이용해서 산업용에너지로 사용하는 방법을 6천억불 이상 들여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아려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앞으로 무석유 문명이 도래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때는 대체 에너지를 발명해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오늘날의 모든 교통과 산업이 모두 스톱하게 될 것이다.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어야 하는데 아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 과학연구 기관들이 아직도 뾰족한 수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옷, 안경, 식품 청과제, 아스피린, 화장품이 모두 석유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러분 석유가 사라질 때 어떤 세상이 올지 아는가?     이제 석유문명을 떠난 새 문명건설을 시작해야 하는 때가 도래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역청으로 쌓은 바벨탑을 무너뜨린 것은 석유문명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이다. 원자로의 수명도 40-60년이 되면 폐기되어야 하는데 지금500여개가 지구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석유가 고갈되면 다 멈출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디에 폐기시키겠는가? 큰일이다. 지층이 조금 움직여도 원자로의 방사선이 샌다는 것이다. 방사선이 새면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한다. 인체를 파괴한다.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인간이 가장 방사선에 약하다. 토끼나 쥐는 비교적 강하다. 방사선에 노출되면 임산부는 기형아를 낳는다.지난해 일본에서 쓰나미로 원자로 방사선이 유출되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제가 몇년전 우크라나이나 갔다가 체레노빌 원전사고로 일어났던 비참한 상황을 기념전시관에 가서 보고 참 놀랍고 무서운 사실들을 많이 알았다. 지금 지구상의 원자로를 안전하게 폐기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부탁하신대로 하나님의 동산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관리하고 다스림으로 공해와 오염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5 .식량과 물의 고갈 문제이다 최근 엘리뇨 현상에 의해 홍수와 태풍등 재해로 많은 나라들이 식량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식량의 문제가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나라는 미국, 프랑스, 호주 알젠친, 몇 나라 만이다. `그 외 대부분의 나라가 식량난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앞으로 21세기중반에는 식량난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 본다. 미국의 인공위성이 지구의 지하수 저장량을 측정하고 있는데 산림이 번성한 곳은 괜찮다.그러나 중국 양자강 주변, 몽고 중앙아세아, 북한, 아프리카 대부분, 호주도 서서히 사막화해 가고 있으며 중남미도 사막화해가고 있다. 남미는 아마존강의 산림이 다행이 공해와 지하수를 보존해주고 있다. 아마존강 주변의 산림을 없애면 남미뿐 아니라 전세계의 기온이 달라지게 되고 급속히 남미가 사막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옥토 1샌치미터가 이루어지기 까지는 수년 혹은 수십년이 지나야 일워진다. 성경에 보면 토양을 매7년마다 안식년을 주어서 쉬도록 했는데 이것은 기가 막히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이다. 계속 땅을 경작하면 땅이 못쓰게 된다. 그러므로 매7년 마다1년을 휴식케 하므로 8년째는 좋은 옥토로 회복되는 것이다. 이 원리를 무시하고 욕심으로 농사하다 보니까 땅이 다 산성이 되어 농사가 안 된다. 그러나 일년간 쉬면 다시 회복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지킬 때 축복을 받았다. 이것을 어기고 땅을 착취만 하니까 땅이 인간에게 보복을 한다. 그래서 성경은 땅들도 하나님의 구속을 탄식하며 호소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구가 온난화해 감으로 농작물이 또한 안 된다. 수산업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오존층이 파괴되어 좌외선이 증가 하고 있다. 좌외선이 증가하면 곡식이 잘 자라도 열매가 하나도 맺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소고기를 좋아하는데 1년에 10억이 넘는 소가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소들을 키우기 위해 산림이 목장으로 파괴된다. 그들이 내보내는 소대변이 대기와 물을 오염시킨다. 그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물을 마시므로 병이 생긴다. 요새는 소를 기르면서 여러 가지 인공 홀몬을 복용 시키거나 주사를 놓아주어서 그런 소고기를 먹을 때 인체에 해롭다. 그러므로 콩을 먹고 두부를 먹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대기오염도 막아서 유익하다. 사람이 먹어야 하는 식품이 어떤 것인가? 무공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오늘날 공해 음식을 마구 먹어 인체에 많은 해를 끼치고 있다.    인구증가로 식량난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21세기 중 하반기에 이르면 80-100억 인구를 헤아리게 될 것으로 본다. 지금도 70억을 넘어섰다. 이때 오는 문제는 식량난뿐 아니라 자원의 부족으로 큰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본다. 지금 세계각국정부가 다 빚 때문에 심각하다. 세계는 과도한 경쟁으로 서로 망해가고 있다. 큰 정부와 많은 기관과 조직, 무기생산, 인공위성발사 등으로 인류는 지금 재원이 고갈되어가고 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류가 서로 경쟁하므로 자원을 낭비하지말고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므로 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무공해 식량을 협력해서 생산해야 한다. 각국이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해서 서로 나누어 먹을 때 피차 살아 남을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특별히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협력할때 인류는 이제 살아남을수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란 소설이 있는데 거기 보면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은 마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동물농장에 끌려가 ‘일만하면 먹여줄 것이니까 일하라’는 주인의 말에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이것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식량고갈을 피할 길이 없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무서운 식량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본다.물은 어떠한가? 물이 생명이다. 물이 부족하지만 창조의 질서를 따라 순환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현재물 중에 2.5%만이 단수이다. 단수를 아껴야 한다.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2500cc의 물을 마셔야 산다고 말한다. 바닷물이 96.5%이다. 이물은 단수가 아니다. 빙수는 황금과 같은 것이다. 지하수나, 토양수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보화이다. 보석에도 결정수가 들어있는데 물이 없으면 보석이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고 한다.  그런데 물의 오염으로 단수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 대기가 오염되고 물이 오염되어가는 것은 나 자신의 생명이 서서히 죽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점에서 자연은 제2의 생명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공기와 물을 깨끗게 하는 것은 나의 생명을 사랑하고 병들지 않도록 나의 집안을 깨끗게 하는 것과 같다. 지금 세계에서 오염된 더러운 물을 마시므로 하루에 어린이들이 15,000명이 죽어가고 있다  6.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에이즈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고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깨고 성적으로 방종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에이즈 바이러스가 큰 문제가 된다. 현재 한 보고에 의하면 에이즈병균에 감염된 환자가 2790만명인데 여기에 5배를 가산한 수룰 실제수로 본다. 에이즈병자가 아프리카에 제일 많다. 원숭이 에이즈가 있는가 하면 보복형 에이즈병도 있다는 말을 듣는다. 말하자면 에이즈환자가 고의로 다른 사람에게 에에즈 병을 옮기는 것이다. 생화학무기 중에 에이즈무기가 있다는 말이 있다. 21세기 중반까지는 에이즈로 약 2억 가량이 사망할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21세기 말까지는 세계인구의 반이 에이즈로 사망 할 것으로 내다 보기도 한다.  이제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현대문명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늘날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기를 갈망하고 있다.우리들이 회개하지 않는한 소망이 없다. 지구의 종말과 문명의 파멸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 현대문명은 The Point of No Return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한지 오래 되었다. 지구종말을 알리는 운명의 시계 바늘이 지난해 11시54분에서 금년들어 11시55분으로 옮겨졌다. 거이 자정을 알리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바벨탑을 쌓아온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류의 문화를 회개하고 하나님중심의 문화를 새롭게 건설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소망이 있다. 오순절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단절되었던 언어가 방언으로 의사소통이 회복되고 유무상통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것은 바벨탑에서 흩어지고 혼돈 속에 빠진 인간들이 성령의 역사로 치유되고 하나되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러한 구원과 치유와 회복의 사명이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다.
    Read More
  • 55
    [오피니언] 신선묵 목사의 교수칼럼 - 저널링 크리스천헤럴드2022.08.25
    오래전의 일이지만 한국의 드라마 중에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대장금이라는 훌륭한 여성 한의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대장금이 비록 교육을 많이 받을 기회는 적었지만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것을 글로 기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그리고 재료들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을 글로 기록하고 그것을 정리해서 의학 지식을 축적해 가는 것이었다. 한국의 또 다른 위인인 이순신 장군에 관한 영화에서도 인상 깊은 것이 그의 난중일기이다. 전쟁통에 그것도 오늘날처럼 편하기 기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벼루를 갈고 붓으로 글을 써야하는 그 시대에 전쟁의 와중에서도 일기를 적고 끊임없이 전쟁 상황 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그것이 다음 전쟁의 중요한 자료로 삼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적어가는 기록의 힘이 대단하다. 이런 일기쓰기는 영성생활에서도 중요하다. 미국에 처음와서 신학교에 다닐 때에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려고 하면은 우리는 무릎꿁고 열심히 기도하는데 미국 학생들이 노트를 하나 가지고 와서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끊임없이 적어가는 모습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었다. 그들은 소위말해서 저널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대화를 하면서 끊임없이 적어가는 것이다. 로버트 클린톤 교수는 성경 속에서 느혜미아를 관찰하면서 느혜미아서가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라고 시작되는 데에서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일반적으로 다른 성경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예언자에게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는 식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느혜미야는 선지자도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직접적인 계시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적어놓고 있는데 그것들이 성경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클린톤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저널링의 중요성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저널링을 날짜를 기록해두면 하나의 벤치 마크가 될 수가 있다. 삶에서의 중요한 성장 혹은 쇠퇴  등을 볼 수 있다. 둘째는 기록을 해두면 우리가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을 기억할 수가 있다. 저널을 가끔 되돌아 보는 것도 중요한데 하나님을 새로이 찬양할 수 있게 하고 그가 이전에 하신 것 들을 뒤돌아서 기억할 수도 있게 해 준다. 셋째는 저널링을 하다보면 우리의 생각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고 우리가 배운 것들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넷째는 저널링은 우리로 하여금 갱신하고 회복하게 도움을 준다. 우리 신앙 생활이 점점 더 나태해질 수 있는데 그럴 때에 저널링이 우리를 일 깨운다. 우리의 저널링 기록들은 자라나는 젊은 지도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수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저널링은 다른 이들이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저널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저널링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쌓아 나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는 하나님께 구별된 시간을 드린다는 것과 둘째는 저널링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하나님께 드린 구별된 시간 만큼 깊어진다면 동시에 기록하는 만큼 그 관계가 구체적이고 디테일해진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글로 적으면서 생각이 많이 정리되는 스타일이다. 기도하다가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할 수 없을 때에도 글로 나의 마음을 쏟아내다 보면은 어느샌가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하게 느껴지고 또 하나님의 뜻이 하나씩 실타래 풀리듯 구별되는 경험을 하고는 한다.또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도 나의 확신이 흔들릴 때가 많이 있는데 물론 내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 분별하였으면 얼른 바꾸어야겠지만 그렇지 않고 나의 내면의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확신을 흔들릴 때에는 이전에 기록한 기도를 보면서 재확신을 하 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마 나에게 있어서 영적 훈련 중에서 가장 중요한 틀 중에 하나는 저널링이 아닌가 싶다.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분야에서도 저널링을 하는데 많은 유익이 있다. 나의 인간 관계들 그리고 사역에 대한 것들도 저널링을 한다. 또 건강을 위하여 수영을 하면서 저널링을 하였는데 많은 유익을 받았다.수영을 하면서도 코치가 어떤 것을 설명해주고 훈련시킨다. 나는 매일 수영을 한 이후에 그날 내가 깨달은 것 특별히 몸으로 깨달아진 것들을 하나씩 기록하였다. 코치가 말한 것을 내가 실제로 하면서 깨달아 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매일 하나씩 그것을 기록해둔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매일 수영을 하면서 오늘은 어떤 면이 새로 깨달아지지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수영이 잘 안되는 날은 집에가서 그 동안 저널링했던 것을 살펴보면 내가 그때는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현재 주위를 두지 않았던 점들이 보이고 스 스로 교정할 수가 있다. 그 동안 축적된 내용이 아마 다른 사람을 코치할수있을 정도의 내용들을 모은 것 같다. 학생들에게 교수법을 가르키면서 이론적으로 공부한 뒤에 학습 토론을 위하여 “Freedom Writer”  Inner city 라는 영화를 함께 보았다. 한 백인 젊은 교사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학교에 부임하여 아이들을 교육하는 이야기이다. 폭력과 인종간의 갈등으로 물들고 교육가들 조차 포기해 버린 아이들 속에서 학생 자신들의 이야기를 찾게 해주고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게 하고 듣게 해줌으로써 소망이 없던 아이들에게 그들의 버려진 삶을 회복하고 서로간에 참을성을 배우고 세상을 변화해 가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 속에서 교사 Erin Gruwell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게 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저널을 쓰게 한다. 교사가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아무런 부담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 나아가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영성 생활 속에서도 때로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기 쉬운때가 많다. 그러나 저널링을 통하여 나 자신의 참 소리, 갈등내면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는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친밀감이 깊어지는 경험을 한다.신선묵 교수월드미션대학교
    Read More
  • 54
    [오피니언] 김병학 교수 칼럼 - "소통은 때를 아는 것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2.08.25
    얼마 전 한국에서는 표절에 관하여 크게 뉴스거리가 되었고 그 중에 어떤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것들도 있다. 다른 사람의 음악이나 논문을 표절하였는데 그 내용이 도에 지나칠 정도이므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표절 문제는 요근래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한 분야 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여러 분야에서 꾸준히 거론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되었었다.  특히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또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이런 비도덕적인 모습 때문에 뉴스거리가 되고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이다.그런데 대부분의 표절한 사람들은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반면에 어떤 분야는 다른 사람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베끼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경우도 많다. 또한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는 분야도 많다.교회는 이런 두 부분의 양면적인 모습이 모두 공존하고 있다. 교회는 철저하게 베끼고 그대로 답습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또 전혀 그럴 수 없는 부분이 있다.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는 하나도 남김없이 그대로 답습해 하며 그대로 닮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야하며 예수님이 살아간 그대로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신 그대로 교회는 닮아 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를 닮은 것 같이 자신을 닮으라고 가르쳤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나 바울이 간 길이 결코 쉽거나 넓고 편한 길이 아니고 좁고 거칠고 고통과 아픔의 길이지만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길이고 이것이 교회 살아가야 할 그리고 감당해야 할 방법이다. 이것에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특별한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교회는 다른 것을 베껴서는 절대 되지 않는 모습도 있다. 대형 교회의 프로그램이나 방법을 작은 교회들이 베끼거나 따라할 필요는 없다. 작은 교회의 나아갈 방향이 대형교회가 아니고 예수님께서 교회들 마다 세우신 이유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목사들의 설교 표절이다. 이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드러난 문제이고 여전히 계속 들려오고 있기도 하다. 매일 설교를 하고 또한 행정과 목회 등으로 바쁜 것이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고 또한 매일 설교하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단순히 바쁘다는 것으로 핑계가 될 수 없다.  목사들이 다른 사람의 설교를 표절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 보다 더 설교를 잘하고 해석을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설픈 내 설교를 전하는 것 보다 저 사람의 좋은 설교를 전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옳지 않은 마음이다. 이것이 한 번 두 번 하다보면 나중에는 아무런 의식도 없이 그 사람의 설교를 그대로 베끼고 심지어 오타까지 베끼면서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않는다. 목사는 말씀을 묵상하는 법과 주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교인들을 심방하고 상담하는 법을 배우고 세상 문화의 흐름을 파악하여 분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목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현장에서 교인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주님 앞에 엎드려서 간절하게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내 설교를 전할 내용이 점점 쌓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은 교회가 코로나 이후 나아 갈 방향을 제대로 잡을 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답습하되 지금의 상황과 현장의 모습을 잘 파악하여 창의적인 목회를 할 때이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어느 누구도 목회의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누가 더 많이 말씀을 연구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교인들을 돌보는가가 중요한 때이다. 교회는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를 알아야 한다. 김병학 목사(주님의교회 kim0409@gmail.com)
    Read More
  • 53
    [오피니언] 지상설교 - 박희민 목사편 - 치유하시는 하나님(1) 크리스천헤럴드2022.09.06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는 목사들이라면 설교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물론, 삶의 철학, 세계를 보는 시각과 가치관 등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들은 자신만의 명설교들을 가지고 있다. 남가주 한인 기독교계에서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원로로 꼽히고 있는 목사 중 한 명이 새생명선교회 회장 박희민 목사다. 박희민 목사는 1936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1974년부터 남가주에서 목회했다. 1988년부터 나성영락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후 2004년 은퇴했다. 현재 새생명선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박희민 목사님의 지상설교 6번째 주제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두번째 설교이다. (편집자주)  오늘 본문말씀이 금시초문인 분들은 없겠지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여러번 읽은 말씀이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은 늘 새로운 말씀에만 계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말씀속에 심오한 진리가 계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도 ‘이전에 듣던 말씀 또 들려주세요’라는 가사도 있다.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지만 알고 보면 모두-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병들어 있다. 우리의 가정도 병들고 사회도 병든 병리적 사회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일어난 강효순, 나영이 어린이의 성폭행사건 등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병든 사회인가를 잘 말해준다.우리의 육신의 질병보다 영적질병이 더 치명적이며, 한걸음 더 나가 가정과 사회 그리고 생태계가 병든 것이 더 심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벨상을 받은 전 고어 부통령은 An Inconvenient Truth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심각한 생태계의 파괴는 인류의 종말을 곧 가져올지 모른다고 경고하였다. 우리가 살고있는 로스엔젤레스는 천사의 도시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많은 폭력, 범죄, 살인, 강도, 절도, 마약, 인종 간의 갈등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고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요, 한계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헌당식을 하고 7일간 잔치를 베풀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약속한 것이다.14절에 보면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고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 지라’했다. 여기서 그들의 땅을 고친다는 말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육신의 질병, 정신적, 영적인 질병을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모든 질병과 생태계의 질병까지 모두 고쳐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시다.  말4:2절에는 내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 올라서 치유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저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기뻐 뛰리라고 했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셔서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치유하셨다.  제게는 믿음의 어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변계단 권사님이란 분이었다. 이분은 특별히 병고치는 신유의 은사를 받은 분이었다. 6..25 당시 한국교회에서 신유집회를 통해 수많은 병자가 치유되는 기적을 행하였다. 저는 그 집회에서 참석해서 예배인도와 설교도 많이 했는데, 저도 기도하면 병자들이 치유되고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저는 하루 종일 수천명의 중환자들을 위해 치유 기도하는 그 권사님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힘들어 보였는지 ‘하나님 저는 신유의 은사는 사양하겠습니다. 그저 말씀의 은혜만 은혜 만 주셔서 설교나 좀 잘하게 해 주세요. 기도했다. 제가 어려서는 내성적이고 말을 너무 못했다. 중학교때는 옆에 앉은 친구가 말을 좀 더듬어서 그것을 흉내 냈더니 저도 말이 가끔 더듬어 졌다. 그런데 그래도 이정도 설교하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런데 제가 목회하면서 중환자 심방때는 몇 번 후회했다. 그때 ‘제게도 신유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서 병자들이 기도할 때 좀 벌떡벌떡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한적이 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기도해서 병자를 다 고치면 의사들이 할 일이 없지 않아요. 한 유명한 크리스천의사는 나는 환자를 돌볼 뿐 고치시고 치료하신 이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이 고쳐 주시되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가 ‘너희가 악한 길에서 떠나면’ 고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였다.  즉 죄에서 회개하고 돌아서면 고쳐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렘2:13에 보면 나의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는데 하나는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이요, 둘째는 물을 스스로 운덩이를 판 것인데 물을 저축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서야 할 죄가 무엇인가? 생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죄요, 세상의 엉뚱한데서 생수를 얻으려고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판 죄가 가장 큰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없이 자기 힘으로 자기 장식대로 살려는 죄가 가장 큰 죄며 거기서 돌아서라는 것이다.  회개란 말의 희랍어는 돌아선다는 뜻이다. 혹은 변화된다는 뜻이다 마치 애벌래가 나방이로 변화되듯이 우리 인격과 삶이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즉, 자기 중심적인 삶, 세상의 것에 삶의 가치와 목적을 두고 산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서고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세례요한과 예수님도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외친 첫 말씀이 ‘회개하라 찬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었다.  이상혁선교사가 쓴 ‘채워주심’이란 책이 있다. 아리조나 아메리칸 인디안 호피족 선교에 관한 책이다. 그들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위해 음식을 많이 준비하여 저녁식사와 집회에 초대하였다. 수백명이 모여들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늦게 몇 사람이 저녁을 얻어먹기 위해 찾아 주었다. 정성껏 준비했던 선교사들은 크게 실망하고 낙심이 되었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젊은 선교사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너무 괴롭고 마음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지내는데 하나님께서 계속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신다. ‘너부터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보다 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했다는 선교보고, 업적에만 관심이 있지 정말 그 인디언을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마음은 없지 않느냐?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보다 오히려 그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교만의 죄가 네게 있지 않느냐? 그 교만의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밤 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새벽에 둘째날 집회를 준비하기 위한 기도회를 갖으면서 이 젊은 선교사가 어제 밤 괴로웠던 이야기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들이 그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멸시한 죄, 선교 실적만 생각하고 그들의 한 영혼 한영혼을 사랑하고 섬기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두번째 집회를 준비하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새벽은 선교사들이 눈물로 회개하면서 기도회를 가졌다. 그리고 더욱 겸손해저서 동네를 다니면서 둘쨋날 저녁 집회에 초대했다. 저녁이 되자 어디선가 많은 인디언들이 모여 들었다.  둘째날 집회는 이 젊은 선교사의 간증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는 회중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들을 정말 사랑하지 못한 죄, 멸시한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 때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이 활짝 열렸다.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나타났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부흥운동은 언제나 회개운동에서 시작되었다.  
    Read More
  • 52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카톡큐티 -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죄악상 (창19:1~11) 크리스천헤럴드2022.09.06
    *인간이 얼마나 타락하고 악해질 수 있을까요? 인간은 하편으로 선하고 아름답고 고상하지만, 동시에 악하고 변태적이며 사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타락한 죄악상은 이런 인간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천사들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던 롯과 만납니다(1). 이들은 롯의 강청에 못 이겨 그의 집에 들어가 무교병을 대접받고, 저녁이 되어 자려고 했습니다(3). 그때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소돔 사람들이 몰려와 롯의 집에 들어온 두 사람을 끌어내라고 요구합니다(4~5). 외지인을 성폭행해서 자신들의 예하로 두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공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 정도로 사악하며 부끄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소돔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 대상의 전형으로 등장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소돔과 다르지 않습니다.*이 폭도들의 요구 앞에서 롯은 그들에게 악행하지 않기를 타이릅니다(6~7). 소돔은 죄악이 관영한 도시였습니다. 이미 ‘소돔’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죄인이었다’고 묘사되었을 정도입니다(13:13). 롯은 안목의 정욕을 따라 이 소돔을 거처로 선택했습니다. 마땅히 떠나야 할 곳에 머물러 있어, 함께 멸망당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성도는 죄의 자리에서 머물지 않아야 하며,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롯은 자신의 집에 몰려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두 딸을 내어주는 조건으로 손님들의 안전 보장을 제시합니다(8). 이런 방식은 사회 관습화된 집단 폭력을 막기에 너무 무기력하고 서글픈 모습입니다. 죄를 죄로 막으려는 세속적 발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없습니다. 죄와 타협하는 것은 오히려 다른 죄를 짓게 할 뿐아니라 결코 선한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를 적극적으로 대적하고 싸워야 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싸워야 합니다.*소돔 사람들은 롯의 제안에 오히려 더 포악스럽게 반응합니다(9). 외부에서 들어온 주제에 자신들에게 재판관 행세를 하려 한다면서 롯을 비난하고 조롱합니다. 이제 그들은 롯을 해칠 기세로 문을 부수고 집에 난입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롯은 소돔 사람들의 광기 어린 폭력에 희생당할 위기를 맞습니다. 실로 참혹한 죄악상과 타락상이 끔찍합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 양보하면 할수록 죄는 더욱 깊숙이 침투하여 우리를 파괴하고 멸망시킬 것입니다.*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난입하려는 순간, 손님들이 개입해 문을 닫고 롯을 보호합니다(10). 그리고 문밖 폭도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지리멸렬하게 만들어 버립니다(11). 하나님은 극적인 순간에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후에 손님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앞으로 롯과 그 가족을 구원할 계획을 통보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거스르고 파괴하는 죄의 준동을 그대로 두고 보시지 않습니다.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겔 16:50)*오늘날 세상은 소돔 사람들 같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갑니다. 분명 이런 모습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죄의 자리를 피하고 죄에 대해 항상 민감하며 거룩함을 따라 성결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부름을 받은 거룩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세상적인 사고와 습관에 있는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으로 불을 밝혀서 영적 눈이 멀어 헤매는 이들을 비추게 하소서. 더 교묘하고, 더 악해져 가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경건한 삶으로 드러내게 하옵소서.최재홍목사쉴만한물가교회 GLAM(Global Leadership Academy for Mission)(909)682-0581Jaychoi0331@hotmail.com
    Read More
  • 51
    [오피니언] 김요셉 목사의 카톡큐티 - 사마리아인 비유의 의미 크리스천헤럴드2022.08.09
     카카오톡 아이디 kimbg1212로 연결하시면 메일 카톡으로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큐티자료를 보내 드립니다.오늘 본문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잘 알려진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가 나온 배경에는 율법사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질문하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예수께서는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에 대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22:37~40) 이 율법교사도 같은 내용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율법교사의 대답은 완벽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를 행하라 그러면 네가 영생을 얻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율법교사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내 이웃이 누구인지” 예수께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는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의 이웃이 될 수 있는 사람과 이웃이 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을 자신들이 지켜야 할 사랑의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경계를 넘어간 이웃 사람은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율법교사는 자신이 좀 더 넓은 울타리를 가지고 있음을 자랑하려고 예수께 이웃이 누구인지를 질문했던 것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입맛는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가지고 살아 갑니다. 즉 자신의 취향에 따라 나의 이웃이 될 사람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취향에 따라 순종할 수도 있고 불준종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웃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납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긴채 고통 속에서 외로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 길을 지나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성별된 사람들이 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사랑의 모범이 되어야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은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그 다음은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는 여행 중에 그곳에 이르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과 서로 경멸하며, 원수로 지냈던 사람입니다. 유대인의 기준에 사마리아 사람은  이웃으로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를 불쌍히 여깁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에게 기름과 포도주로 응급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옷을 찢어서 상처를 싸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나귀에 태워 여관에 데려와 책임을 다하여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그 다음날 새벽에 일찍 떠나야 할만큼 바쁜 사람이었으나 도움이 절실히 요청되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바쁜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였습니다. 이 말씀 후에 율법교사에게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말씀은 율법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는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율법교사는 율법을 자신의 기준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읽은 대로, 그가 이해한 대로, 그가 믿는 대로 잘못 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나는 하나님의 기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만약 영생이 나의 노력이나 행함으로 얻어야 한다면 나는 불가능합니다. 라고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강도를 만나서 죽을 수 밖에 없는자 이었지만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셔서 사아리아 인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를 받은 자답게 은혜를 나누며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Read More
  • 50
    [오피니언] 지상설교 - 박희민 목사편 - 인류문명은 어디로? (1) 크리스천헤럴드2022.08.09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는 목사들이라면 설교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물론, 삶의 철학, 세계를 보는 시각과 가치관 등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들은 자신만의 명설교들을 가지고 있다. 남가주 한인 기독교계에서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원로로 꼽히고 있는 목사 중 한 명이 새생명선교회 회장 박희민 목사다. 박희민 목사는 1936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1974년부터 남가주에서 목회했다. 1988년부터 나성영락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후 2004년 은퇴했다. 현재 새생명선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희민 목사의 지상설교 5번째 주제 ‘인류문명은 어디로?’ 첫 번째다. (편집자 주)“한마디로 인류는 그동안 바벨탑 문명을 쌓아왔다.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다. 이 역청은 석유가 원료로다. 현대문명은 석유가 없으면 꼼짝 못하는 석유문명이다”인류문명의 현주소는 어디에 와 있을까? 인류와 인류문명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인류가 계속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많은 분들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기 보다는 비관적이다.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엘고 전부통령도 ‘불편한 진리 (An Inconvenient Truth)’라는 다큐멘타리 영화에서 생태계의 파괴로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그럼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문명을 발전시켜왔는가? 한마디로 인류는 그동안 바벨탑 문명을 쌓아왔다. 오늘 읽은 창세기 11장에 보면 인류는 동방으로 옮겨오다가 시날 평지에서 벽돌을 만들어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다. 이 역청은 석유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현대문명은 석유가 없으면 꼼짝 못하는 석유문명이다. 이러한 바벨탑은 결국 인간의 자기 이름을 내려는 이기심과 하나님을 향해 도전해보려는 인본주의적 교만에 근거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쳐서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하나님이 그러한 인간의 교만을 치심으로 인류는 언어에 혼돈이 왔다. 진정한 대화가 단절되었다. 오늘 인류가 직면한 문명의 현실과 미래는 바로 바벨탑의 종말을 바라보는 듯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아슬아슬한 길을 걷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중엽 까지도 현대 과학문명은 끝없이 밝은 유토피아의 세계를 약속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점점 그 앞날이 어둡고 종말적이다. 그 동안 과학은 성경이 말하는 역사의 종말을 부인하였는데 오히려 과학이 인류의 종말을 증명해가고 있다. 아이로니칼 한 이야기이다. 기계문명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1. 컴퓨터 문제이다류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를 갖다 준 것이 사실이다. 지구가 완전히 작은 마을이 되었다. 농부들도 이제는 일하다가도 핸드폰을 돌려 점심을 주문해 먹고, 다이얄만 돌리면 세계 어느 곳에 있는 사람과도 쉽게 통화 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특별히 기술문명(technology)의 혁명은 콤퓨터의 발명에서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고, 인류문화를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하였다. 콤퓨터 하나로 온 세계의 그 엄청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방지일목사님은 100세가 넘었는데도 얼마나 콤퓨터를 즐기며 세계 각곳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이매일을 열심히 보는지 모른다.이렇게 컼퓨터에 의존해서 일하다보니까 이제 콤퓨터만 shut down되면 모든 업무가 스톱될 수 밖에 없다. 얼마 전에 공항에서 콤퓨터가 스톱하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꼼작 못하는 것을 경험했다. 정치, 경제 국방, 산업, 모든 분야에서 큰 문제와 혼란이 야기된다또한 염려되는 것은 이 콤퓨터가 마귀의 손에 들어가 악용될 때 굉장한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을 감시하고 인간들의 정보를 악용해서 자유를 빼앗고 꼼짝 못하게 노예로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콤퓨터 사이언스에도 들어가 앞장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콤퓨터가 사용되도록 이끌어가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콤퓨터를 악용하지 못하게 막고 인류의 번영과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실현해가는데 선용하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다.  2. 복제인간의 문제유전공학의 발달로 복제인간이 가능해 짐으로, 여기서 생기는 윤리적 신학적 문제가 큰 사회적 잇슈로 대두되고 있다. 자칫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에 도전하므로 초래될 수 있는 무서운 단계에 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 등장할 위험한 상황에 와 있다. 물론 학자들 중에는 짐승의 품종개량과 장기이식용으로 복제인간을 만들면 좋지않느냐고 말한다. 동물의 품종개량까지는 몰라도 장기이식의 경우에 그것을 사용하고 그 복제인간을 폐기처분 해야 하기 때문에 심각한 윤리문제나 인권문제가 대두 되지않을 수 없다. 만일 복제인간의 출현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지 못한 인간이 출현하게 되면, 이 사회는 큰 혼란과 비극이 생길 것이 틀림없다.   3. 생태계의 파괴 문제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는 지난 100년 동안 인류가 저지른 가장 큰 범죄행위는 환경 파괴 라고 지적했다. 즉 하나님이 지구를 통해 인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을 파괴함으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생명의 존엄성과 생태계의 소중함을 저버렸다고 했다.최근 기상의 변화로 많은 피해가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기상의 이변은 인간의 실수로 생기고 있다. 자연구조속에 여러 가지 물체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라 이동을 하면서 수분이 구름이 되어 떠돌다가 비가되어 땅에 내리고, 다시 비가 산과 지면에 스며들면서 어떤 물은 며칠 만에 어떤 물은 몇 년 후에 생수로 흘러나오고 또 바다로 흘러 들어 가, 지구는 자동적으로 순환되면서 지구전체의 균형을 유지해 가고 있다. 그런데 오존층의 파괴로 최근에는 기상이변이 각 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지진이나 폭우로, 태풍이나 쓰나미로, 뜨거운 온도와 재난으로 엄청난 물질적 피해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프리언(Freon)가스가 인체에는 해롭지 않다고 해서 안심 하고 그 동안 생산해 냈다. 그 동안 만든 인공화학물이 4천만톤을 넘는데 이것이 대기권을 넘어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공위성을 쏘면서 이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일로 샌디에고에서 프리언가스를 생산하는 두폰 회사의 과학자들과 다른 과학자들 사이에 격심한 공박전이 있었다. 두폰 회사에서는 대체 물질을 만들어 내겠다고 했지만 못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까지는 환경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큰 잘못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기가 오염되고 물이 오염되어 자연환경이 파괴되면 그것은 곧 우리 인간의 생명이 파괴되고 죽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연과 우리 생명이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수년전 동남아에서 수십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해일, 하이티에서 있었던 지진, 미얀마에서 있었던 30여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난, 홍수, 폭우, 그리고 지난해 일본에서 있었던 쓰나미도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불러운 재난이라고 할수 있다. 오존층이 회복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번개가 칠 때 회복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번개가 칠 때마다 ‘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좀더 긴 시간동안 번개를 쳐서 오존층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기도 해야 될 것 같다. 다른 방법은 인공위성을5천개쯤 하늘에 띄워 인공번개를 만들수 있다면 그것도 회복시키는 한 방법이 될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 돈은 막대한돈 이다. 현재까지 지구상에는 5천여개의 인공위상이 발사되었는데, 그 중에 2천5백 여개는 떨어지고, 현재 2천5백여개가 공중에 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인공위성하나 발사하는데 드는 비용이 엄청난다. 그러므로 인공위성을 띄워 인공번개불로 오존층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거이 불가능하다. 이점에서 인류는 이제 프리언 가스를 안 만들어도 위기에 직면하고 만들어도 파멸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어있다. 기상이변으로 남북극의 빙산이 서서히 녹아가고 있다. 세계가 온실게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기온이 올라가 폭염이 계속되고 빙산이 다  녹아버리게 되어있다. 지금도 해안선이 높아지면서 섬들이 물에 잠기고 있는데, 이대로 나가면 앞으로 얼마 안가서 해안지대의 집들이 다 물에 잠기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내륙지방도 안심 못한다. 뉴욕 동경, 상하가 물에 잠기고 시베리아와 카나다의 평원까지 낮기 때문에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다.인간이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해서 계속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면 이렇게 온 지구가 사막화하게 된다. 나무를 심으면 다소 방지할 수 있다. 큰 나무 하나가 50톤의 물을 저장한다고 한다. 그러면 기후도 좋아지고 물맛도 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50년이 걸린다. 현재의 기상이변을 사람의 힘으로 해결 못하고 있다.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이 주는 먹거리로 자연 안에서 살다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자연의 한 지체이다. 자연과 인간은 한 몸이다.신토불이라는 말이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잘 돌보는 일은 인간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임과 동시에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반인륜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지금 생태계의 파괴로 11,046종의 동식물이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인간에게 땅을 다스리라고 사명을 주셨는데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녹색세계사라는 책이있다. 이책은 자연환경 즉 생태계를 중심으로 쓰여진 책이다. 이책에 남태평양 하단에 있는 이스터섬에 관한이야기가 나온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다 멸종되었는데 하나의 미스테리이다. 그런데 이책에서는 부족간에 서로 경쟁하면서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나무를 다베고 돌을 채석하여 석상을 만들면서 자연이 전부 파괴되고 훼손되면서 짐승도 사라지고 자연이 퇴폐되면서 자원도 고갈되어 멸종되었다고 결론을 내고 있다. 이책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엘조니주 카이카이바브 고원에는 사슴과 퓨마와 늑대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퓨마와 늑대가 사슴을 잡아먹으니까 사슴을 보호하기위해 퓨마와 늑대를 잡아없앴더니 처음에는 사슴이 늘어났는데 나중에는 사슴이 풀을 다 뜯어먹어 고원이 황폐해지면서 사슴도 차차 멸종되는 것을 발견했다.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말해준다.여러분! 자연과 잘어울리세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세요. 그럼 나도 참멋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