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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샘신칼럼 - 바울은 어떤 충격을 받았는가? (행9:19-22)

작성일 : 20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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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을 만난다면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의 변화 역시 반드시 뒤따르게 된다.

 오랫동안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 어느 날 단번에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수십년 담배를 피던 사람이 갑자기 담배를 끊는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술을 먹지 않고 담배를 피지 않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일어난 외적인 변화다. 

외적으로 일어난 변화는 내적변화의 열매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느 날 우연히 종합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당신은 간암입니다. 술과 담배를 끊지 않으면 1개월을 넘기지 못합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어떻게 하게될까? 

에이! 이미 망가진 몸 먹고 마시고 그냥 죽자 할까? 아마도 아무리 오랫동안 먹고 피던 술과 담배라도 살기 위해서는 끊게 될것이다. 

이런 변화는 충격적인 변화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충격적인 인생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울의 이야기다.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다메섹에 도착한 바울은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던 바울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히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된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바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는가 말이다.

다메섹으로 떠나는 바울의 모습과 다메섹에 도착한 바울이 이렇게 달라졌다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바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생각한다면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 역시 구체적이지 않고 어쩌면 모호한 표현일 수 있겠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말한다면 바울의 생각에 어떤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 다메섹 도상에서 달라진 바울의 생각은 무엇일까?  우리가 그 사실을 확인하려면 다메섹에 도착했을 때 바울이 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생각의 변화는 그에 따르는 행동을 낳기 때문이다. 다메섹에 도착한 바울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증거한다. 

하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 전의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다. 

바울은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사칭한다고 믿었었지만 이제는 사칭이 아니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다시 말해 바울의 생각, 지식, 지각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바울의 생각을 바뀌게 한 것일까? 바로 주님의 부활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부활한 주님을 만나던 것이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구약 말씀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바울이었기에 바울에게 있어 나무에 달려 죽은 예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요 사기꾼이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니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했던 것이다. 

이런 바울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적변화란 생각의 변화이다. 

만일 우리의 생각이 달라진다면 행동의 변화 역시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생각이 달라질까? 여기서 말씀과 성령님이 등장한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켜 주셔야 한다.  

하나님을 그 일을 어떻게 행하실까?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일 하신다. 

다시 정리하자면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이해시키시며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바울처럼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우리에게 생각의 변화가 없다는 것인데 바울은 간증하기를 "매일 새롭다"고 했다. 바울은 매일 매일 달라졌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성화라고 말한다. 성화의 은해가 우리 모두의 삶속에 오늘도 그리고 매일 매일 일어나 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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