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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상설교 - 박희민 목사 편 - 부활의 승리 (2)

작성일 : 202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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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11절 ~ 18절
설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사들이라면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물론, 삶의 철학, 세계를 보는 시각과 가치관 등이 자신의 설교에 담기기 마련이다. 존경받는 목회자들은 자신만의 명설교들을 가지고 있다. 남가주 한인 기독교계에서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원로로 꼽히고 있는 목사 중 한 명이 새생명선교회 회장 박희민 목사다. 부활절기를 지나는 한인 기독교인들에게 전하는 부활의 승리라는 제목의 설교 중 두 번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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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필립 부룩스라는 유명한 목사가 있다, 링컨 대통령의 장레식에서 설교한 목사였다. 그런데 그의 원래 꿈은 하바드대학교에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꿈이 좌절되자 낙심하고 고통 스러워 했다. 하지만 그 고난 가운데 오히려 믿음을 더 얻었으며 후에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보스톤 지역과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에피스코플교회 주교를 지내면서 더 큰 일을 하고 더 많은 영향력을 미국 사회에 미쳤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필립 부룩스 목사의 이야기 중에 이런 일화가 있다. 그가 말 년애 병들어 입원하게 되었는데 아무도 면회를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이름있던 잉거솔이라는 법율가가 면회를 요청했는데 유일하게 허락했다. 그는 우쭐대면서 필립 목사를 만났다. 그랬더니 필립 목사가 다른 사람은 천국에서 만날 수 있겠지만 당신만은 아무래도 못 만날 것 같아서 특별히 만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잉거솔이 충격을 받고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생각을 초월하신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

어떤 부인이 바가지를 계속 긁으니까 남편이 듣고 있다가 결국 돈이 없다는 말이군 하고 응수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생각해 볼 때 결국 우리가 슬퍼하고 낙심하며 절망하는 이유가 나의 삶 속에서 길이요 진리료 생명이신 주님을 모시지 못 한데서 오는 문제인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난과 기아의 문제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온 인류가 1년간 생산한 곡식과 물자를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다면 7년을 먹고도 남는다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이 없기에 일 년도 안 되어서 세계 곳곳에서는 수십만이 굶어 죽어가며, 북미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비만증으로 병들어 죽어간다. 정말 평화의 주님을 모시고 살 수 있다면 이 땅에 전쟁과 싸움이 멈추고 그 전쟁 비용만으로도 수 백 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2010년 12월 23일 안동의 귀금속협회 회장 집에 4인조 복면강도가 침입했다. 모녀의 옷을 벗기고 끈으로 묶어 놓고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런 집에서는 귀금속을 집에 두지않고 은행같은 곳에 보관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주인 회장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 장면을 바라본 주인이 놀라서 마침 가방에 널어온 천 만 원을 내어 주면서 이것 가지고 가고 집에 있는 쓸만한 물건 있으면 그것도 가지고 가되 딸에게는 손을 대지 말라고 사정했다. 

그런데 그들이 책상 서랍을 열자 감사패 하나가 나왔다. 그 감사패는 정창근 장로님이란 분이 이 회장에게 준 것이었다. 이 정 장로님은 병원원장도하고 재활원과 자선단체의 이사장도하며 그 지역에서 많은 봉사를 하는 덕망있는 분이다. 그래서 안동의 슈바이쳐로 불리며 많은 분들이 존경하는 주님을 참으로 잘 믿는 장로님이다. 그것을 보더니 한 강도가 좀 심각해졌다 정창근 장로님게 많은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었다. 그들은 저희들끼리 숙덕거리더니 슬그머니 미안하다고 하면서 집을 떠나갔다. 이 가정은 정 장로님 덕분에 더 정확히 말하면 그분이 믿는 예수님 덕분에 그날밤 봉변을 면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과 부활의 주님을 증거 해야 한다. 어떤 타운의 마켓 주인이 그 타운에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설교를 잘한다고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크게 선전했다. 그래서 어떤 분이 “당신은 그 교회 나가십니까”라고 물었다. 자기는 그 교회 안 나간다고 했다. 그럼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았느냐? 물었다. 설교도 들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그 목사님이 설교를 잘하는 줄 아느냐? 물었더니 그 목사님이 취임한 후에 그 교회 교인들이 외상값을 다 갚았다고 답했다. 말하자면 교인들의 삶이 달라진 것을 보고 설교를 잘 하는 줄 알았다는 말이다. 그것이 증거라는 말이다. 옳은 말이다.

어떤 젊은 목사가 한 교회에 취임했다. 첫 설교를 하고 광고시간에 광고를 하려는데 강단 위에 종이 쪽지가 올려있었다, 광고를 부탁하는 종아인줄 알고 읽었다. 거기에는 “우리는 목사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과 부활의 주님을 만나보기를 원합니다. 교인일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좀 충격적이었지만 그것이 교훈이 되어 그 교회서 훌륭한 목회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옳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우리는 여러분들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의 주님을 만나보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삶을 통해 부활의 주님을 보여주고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

부활하신 주님이 바로 곁에 계셨지만 육신의 눈으로 영안이 가리워져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우리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 임마누엘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며 두려워하고 낙심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파랑새의 작가는 행복의 파랑새에서 한남매가 붙잡으려고 사방을 쫓아다니다가 지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행복의 파랑새가 집 처마에 앉아있더라고 묘사했다. 괴테도 “네 발 아래를 파라 거기에 네가 찾는 생수가 흐르리라” 했다. 

주님은 “천국이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하지 못하리니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했다. 영어성경에는 within you 혹은 among you라고 번역했다. 주님을 내 마음 속에 모시면 내 마음 속에 천국이 임하고 너와 나 사이에 모시고 우리 안에 모실 때 우리 가운데 천국이 임한다는 뜻이 아닌가? 찬송가에도 초막이나 궁권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천국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님은 더이상 마리아의 슬픔을 방관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마리아야! 부르심으로 그의 영안을 떠서 무덤 앞의 슬픔과 두려움과 절망이 부활의 기쁨과 부활의 승리로 바뀌게 하셨다.

그러나 무조건하신 것은 아니다. 그녀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당신이 옮겨갔거든 내게 이르소서 내가 가져가리다”하는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고백을 들으시고 마리아야 말씀함으로 그의 영안을 떠서 무덤 앞의 슬픔과 절망이 변하여 부활의 기쁨과 승리로 변하게 하셨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공동묘지다. 그녀는 연약한 여성이다. 시간은 어두운 새벽이다. 그녀가 가지고 가겠다는 것은 황금덩어리가 아닌 무겁고 냄새나는 시체이다. 그럼에도 주님에 대한 그녀의 뜨거운 사랑 고백을 하게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님 우리 가정의 십자가를 내가 지고 가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어려운 십자가를 내가 지고 가겠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입니다. 이런 고백이 있을 때 무덤 앞의 슬픔과 정망이 변하여 부활의 기쁨과 승리로 변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사랑의 고백을 통해 무덤 앞의 슬픔과 절망이 부활의 기쁨과 승리, 부활의 능력과 영광으로 바뀌는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11:25)했다. 부활절기를 지내며 우리의 삶을 통해 부활의 복음을 삭막하고 황폐해가는 이 땅에 널리 전파하므로 이 땅에 생명의 새 물결이 넘쳐흐르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박희민 목사

새생명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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