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 박희민 목사편 -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2)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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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상설교 - 박희민 목사편 -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2)

작성일 : 20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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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 23절 - 24절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는 목사들이라면 설교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물론, 삶의 철학, 세계를 보는 시각과 가치관 등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들은 자신만의 명설교들을 가지고 있다. 남가주 한인 기독교계에서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원로로 꼽히고 있는 목사 중 한 명이 새생명선교회 회장 박희민 목사다. 박희민 목사는 1936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1974년부터 남가주에서 목회했다. 1988년부터 나성영락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후 2004년 은퇴했다. 현재 새생명선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희민 목사의 지상설교 3번째 주제 ‘영과 진리도 드리는 예배’ 두 번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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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를 보면 크게 두 가지 순서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감사와 응답이다. 

예를 들어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고 축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계시하고 선포해주는 것이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헌금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에 대한 인간의 감사와 응답이다.

이 두 가지가 마주치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통해 죄 용서함을 경험하고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맛보며 새 사람됨을 체험하게 된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보여주시는 새로운 삶의 비전과 환상을 바라보게 되며 상처받은 심령이 치유되고 회복되며 자기 자신과 세상과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새 힘과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신령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가 회복되고 예배가 살아나야 한다. 예배가 살 때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우리 사회와 백성이 살고 소망이 있게 된다. 그럼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령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가 어떤 것인가? 기독교 예배에는 성경을 기초한 다섯 가지 중요한 신학적 원리가 있다.


1.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이 이해해야 한다. 예배의 대상이 잘못될 때 우상숭배가 되고 미신이 되어진다. We become what we worship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예배의 대상을 닮아가게된다. 예배드리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요 인자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인격적인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예배드릴 때 그의 거룩하심과 인자 하심과 공의와 사랑을 닮아가게되는 것이다. 인격적인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경배하고 찬양해야 한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 스랍들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우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바라보고 체험하면서 자기 자신이 누군가를 깨닫게 된다. 

그는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하고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 하게되며 그때 하나님이 스랍을 통해 숯불로 그의 입술을 지져 깨끗하게 치유하고 새사람 되게 하신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누가 나를 위해 갈꼬하는 부름에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소서 응답하고 헌신하게 된다. 

예배를 통해 이 세 가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바라보며, 자신이 죄인 됨을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새 사람됨을 경험하며 새 소명과 헌신을 경험하여야 한다.

주일 오후에 어느 목사님이 집으로 가다가 집 가까이에 사는 집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이 오늘 교회에서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었더니 그가 머리를 만지며 대답하기를 “사실은 목사님 제가 오늘 교회가서 예배 드리면서 골프장 생각만 하고 앉아 있기보다는 골프장에 가서 교회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골프장에 갔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말이 된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딴생각하고 있으면 예배를 공치게 되는 것이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경배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섬겨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중심의 예배.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가 볼 수 없다. 그 하나님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다. 예수의 성육신은 하나님을 보여주셨다. 그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의 부활은 우리의 영생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을 바로 이해할 때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진리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이해 할 수 있을 때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시고 자주 들렸던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삼남매의 가정이 있었다. 한 번은 예수님이 그 가정을 심방 가셨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서 말씀을 경청하며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마르다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였다. 말씀과 예배없이 섬기다 보면 불평이 생긴다. 그래서 예수님께 동생 마라아로 하여금 왜 좀 나를 도와주라고 말씀하지 않는냐고 불평하게 되었다. 그때 예수님은 네가 많은 일로 분주하지만 한 가지면 족하도다 하시면서 마라아는 그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인가? 예배가 우선권이라는 말이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도 먼저 예배를 priority로 두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예배가 없는 섬김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섬김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독선적인 섬김이 된다. 그때 봉사가 기쁨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고 불평거리가 되어진다. 진리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예배가 될때 예배자는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사랑으로 섬기게 되는 것이다.


3. 성령을 통한 예배.

예수님의 사건은 역사적으로 2천 년 전 사건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오늘 나의 사건과 교회 공동체의 사건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 곧 성령의 역사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설교만 듣기위해 교회 나와서는 안 된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와야 한다. 예배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고 치유를 경험하고 구원을 경험하며 삶의 변화를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예배를 통해서만 우리는 삶의 감격과 눈물과 회개와 치유, 그리고 삶의 놀라운 변화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4. 공동체적 예배.

예수님은 제물을 드리다가 형제와 불화한 것이 생각나거든 제물을 두고 돌아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돌아와서 그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다. 이것은 공동체 예배를 강조해 주는 말씀이다. 찬송을 함께 부른다든가 서로 인사를 한다든가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은 바로 공동체적 예배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드리고 서로 인사도 안하고 째려보고 나간다든가 제직회나 파킹장에서 서로 다투고 싸운다면 예배를 공치는 것이다. 온 교회가 주님 안에서 한 공동체가 되고 한 사람이 아파 할 때 모든 지체가 함께 아파하고 한 사람이 기뻐 할 때 온 공동체가 함께 기뻐하며 축제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김 집사가 아파하는데 이집사가 고소하면 이것은 한 몸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다. 

  

5. 기독교예배는 예배와 삶이 하나다.

로마서 12잘 1절에 보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했다. 무슨 말인가? 우리의 삶을 통해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는 참된 예배라는 것이다. 

NIV 영어성경에는 ‘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라고 번역하였다. 계속해서 2절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했다.

어떤 목사님이 미국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계속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간증하는 등 다른 교회 예배와 달리 예배가 진행 되고 있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성도에게 “정식예배가 언제부터 시작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당신이 이 교회 문을 나갈 때부터 정식예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아주 중요한 말이다. 주일 한 시간 예배는 서론이다. 그리고 주일 오후부터 월화수목금토일 주일 아침까지가 본론이다. 그러니까 주일예배에서 선포되고 경험한 말씀과 은혜를 일주일 동안 가정과 사회에서 혹은 일터에서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예배의 끝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영적예배의 시작인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예배와 삶은 하나다. 아니 예배와 섬김도 하나이다. 영어로 Service라는 단어는 예배도 되지만 섬김이라는 뜻도 된다. 이것은 예배와 섬김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잘 설명해 준다. 

크리스천에게는 강대상과 오피스의 Desk가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교회 성찬상과 가정의 식탁이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것이다. 예배와 선교도 하나이다. 예배와 삶이 하나되지 못하고 예배와 섬김 또는 선교가 하나되지 못하고 분리될 때 위선적인 삶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는 영적인 예배는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것이다. 즉 삶의 현장에서 가난하고 고난 당하며 소외된 사람들 예를 들면 고아나 과부들, 다시 말해서 자기 힘으로 자기 권리를 지킬 수 없는 힘없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가지고 찾아가 만나주고 사랑해 주며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섬겨주는 삶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가 세상에는 심미적 크리스천들이 많은데 이들은 누구냐? 예배드리고 위로받고 즐기기만 히는 사람들이다. 이웃의 가난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주고 그들의 고독과 아픔을 나누고 섬겨주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참여하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다.

또 윤리적 크리스천들이 있는데 이들은 누구냐? 내가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경험케 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윤리적으로 실수한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상처를 주고 받게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다. 

내가 신학교를 책임을 지고 있을 때 공부했던 한 목사님이 있다. 그는 조폭 세계의 경험도 있고 마약 경험도 있는데 그가 한번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자기가 교회에 들어와 보니까 조폭 세계에서도 보지 못 한 것을 볼 때가 많다.” 조폭 세계는 질서가 있고 충성이 있고 의리와 용서가 있는데 교회는 그렇지 못한 것을 수없이 경험한다는 것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최고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신령과 진리로 드림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무엇보다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아벨과 가인의 제사 중 아벨의 예배만 받으셨다. 그것은 아벨이 믿음으로 드렸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한 예배가 되도록 마음을 열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예배는 전쟁인 동시에 축제다. 예배는 생명이요. 주님과의 만남이요. 응답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경청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무엇보다 예배를 통해 삶의변화를 체험하며 말씀과 은혜를 생활화해야 한다. 이런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축복한다.


박희민 목사

새생명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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