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만 목사의 지상설교 - “로드쉽(Lordship)” 골로새서 1장 21절-29절 > 특별기고

본문 바로가기

뉴스

[특별기고] 박재만 목사의 지상설교 - “로드쉽(Lordship)” 골로새서 1장 21절-29절

작성일 : 2024-02-09

페이지 정보

본문

박재만 목사(미러클포인트교회 / OC교회협의회 회장)

높은 파도앞에 섰을때 누구는 빠져죽지만 
누구는 서핑을 하기도 한다. 믿음의 차이다.
리더들의 참 로드십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고 이웃이 드러나도록 일하는 것

2024년도가 시작되면서 1월 달에 각기관들 마다 여러 이 취임식이 열리고있다.  교회협의회 33대 회장 취임이 있었고, 또  10대 장로협의회 취임식이 있었고 오늘은 우리 44대 평신도전도회연횝회 이취임식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게 됐다. 

리더십이라고 하는 것은 배를 계획했던 목적지로 보내는 것을 말할 것이다. 리더도 중요하지만 팔로워도 중요하다. 리더가 아무리 중요해도 팔로워가 말을 듣지 않으면 결국 침몰한 타이타닉 호가 되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팔로우어가 잘해도 리더가 잘못되면 유라고의 풍랑을 만날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좋은 리더와 좋은 팔로워와 그 때에 맞는 시대적 상황 이 세 가지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하나님의 위대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좋은 리더십도 있지만 Lordship, 주님께서 우리를 100% 이끄는 것이 가장 큰 성공 비결을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 골로새서의 이야기는 이방인 교회이다.  

처음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 크리스찬으로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이 예수 믿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은 같이 밥도 먹으면 안 되고 같이 말도 섞으면 안 되고 정말 개 취급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이방인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조건을 내놓은것이다.  

이방인들이 크리스찬이 되려면 똑같이 유대인이 돼야 하니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등 조건들을 달았다. 이방인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웠다. 방향을 잃어버렸다. 그소식을 전해 들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쓴 편지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다. 

말씀을 보면 ‘전에는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예수의 육체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앞에 세우셨으니’라고 골로새 교인들에게 바울은 얘기한다. 그러니까 이제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신경쓰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라고 말씀한 것이다.

2024년도에 우리들이 살아갈 때에  예전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흠없는 자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서 있는 것이라 믿는다. 

이 말씀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일꾼이 된 것은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 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을 이끌고 가는 것은 리더지만  100% 내가 이끌다 보면 실수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주님이 이끌어 가면 100% 성공할 줄 믿는다. 그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사명이다. 

각자 교회에는 사명이 있고 각 기관에도 사명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사명속에 공통분모가 있어야 된다.  각자의 태도와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빛과 소금되는 것인데 진정한 로드십은 주님이 왕 되시기 때문에 리더들이 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을 돋보이게 하며 이웃을, 다른 사람들을 돋보이도록 일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섬김이고 그것이 바로 신앙이 아닐까. 이제 그러기 위해서 한 가지가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24절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라고 기록됐다. 고난을 육체에 채워라… 아니 육체에 복을 채워도 부족할 판에 무슨 고난을 채울까. 말로는 하나님을 돋보이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돋보이고 싶고 내가 조금 더 얼굴이 나타나길 원하는 마음이 있다. 이게 바로 육의 생각이다. 

고난을 육체에 채운다. 육체를 파괴하는 것은 고난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육체가 왜 무너져야 될까?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하셨고 영의 생각은 생명이라 하셨다. 육체가 무너져야 되는 이유가 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그 능력은 내 속에 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그 영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능력이 드러나려면 막고 있는 어떤 것이 깨어져야 한다.  바로 육체라고 하는 것이다. 육체가 매맞고 육체가 깨어져야지만, 마치 강낭콩의 껍데기가 벗겨져야지만 싹이 올라오는 것처럼 육체가 깨어져야지만 능력의 생명이 올라온다. 고난이 와야지만 인간은 깨어진다. 깨어져야지만 그의 능력이 펼쳐지게 되는 것

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기록했다. 왜? 내 육체가 막고 있는 이상 내 속에 있는 생명 역사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내 육체가 막고 있는 이상 내 속에 있는 주님의 능력이 드러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육이 깨어지지 않는 한  주님의 리더십이 드러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2024년도가 시작하지만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시길 바란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기기억해야한다. 그 고난은, 끊임없이 우리의 육체를 깨뜨리는 것이다.

내 생각을 깨뜨려 무너뜨리는 것이다. 하나님 생각을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 믿는 것이다. 신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끊임없이 육체에서 영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이다. 

우린 때때로 내가 잘 되면 하나님 가까이 있는 것 같고 내가 잘 안 되면 하나님이 너무 멀리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모든 기준이 무엇인가? 내가 중심이 되었을때 그렇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하여 문제를 볼 수 있기 바란다. 

고난이 온다고 사람들이 다 물러 서는 것은 아니다. 높은 파도앞에 섰을 때 누구는 빠져 죽지만 누구는 거기서  서핑을 하기도 한다. 믿음의 차이다. 파도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몸에 ,내 육체 가운데 고난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면 올수록 그렇구나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더 풀어지려고 하는구나 라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때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딱 두 가지 날만 있다고 한다. 투데이(today)와 댓데이(That Day!)만 있다고 한다. 바로 오늘과 그날이다. 그날은 무엇인가? 바로 주님 앞에 설 그 날이다.  

어떤 자리에서도 자기의 이름이 많이 불려지면 불려질수록 부담스러워 해야 한다.  결코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만 드러나고 우리의 이름은 감춰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이다. 내 이름이 많이 불려지면 불려질수록 불법을 행할 간차가 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살겠는가?

세상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 남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죽어서 예수님만 남기면 된다.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에 고난을 주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이름 내는 거 좋아하고 줄 서는 거 좋아했고 겁도 없이 이민 교회를 시작해서 엄청나게 깨졌다. 그 고난을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서 많이 몸부림치고 흔들리면서 깨닫게 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참 리더는, 크리스찬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돋보이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육체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자. 육체 고난을 기뻐하자.  고난이 결국은 내 안에 있는 능력이 드러나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이런 태도로 우리 모두 한 해 동안에 사역하고 섬긴다면  놀란 역사가 일어나게될 줄로 믿는다.  

(연합회 이취임예배 설교 요약)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