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춘식 교수와 함께 하는 조나단 에드워즈 선교신학 <다음 세대를 세우는 선교신학 에드워즈의 교육관과 디아스포…
크리스천헤럴드2026.07.03
요즘 미주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코리아 1 위를 기록한 이 드라마는 무너진 교육 현장과 교권 붕괴라는 묵직한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며 한국은 물론 해외 한인 사회에서도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통쾌하다는 반응과 씁쓸하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오는 이유는 하나다. 드라마가 건드린 질문이 현실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과연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가.” 이 질문은 미주 한인 부모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장소가 달라졌을 뿐, 자녀 교육을 둘러싼 고민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업, 성공적인 삶을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부모라면 곧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 아이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이 두 질문 사이에서 많은 디아스포라 가정이 갈등한다. 미국 사회의 기준과 신앙 공동체의 기대, 부모의 소망과 자녀의 정체성 사이에서 어느 쪽을 붙잡아야 할지 흔들린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18 세기 사람이지만, 그의 교육관은 바로 이 갈등 앞에 서 있는 오늘의 디아스포라 부모들에게 놀랍도록 선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에드워즈는 교육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사회적 성공을 위한 준비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교육이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창조된 존재이다. 그러므로 참된 교육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이것은 에드워즈의 신학에서 ‘종교적 정서(Religious AffecFons)’와 깊이 연결된다. 그는 참된 신앙이 머리의 동의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성경 지식을 외우게 하고 교회 출석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녀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기울어지도록, 그분의 아름다움과 선하심을 맛보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 교육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에드워즈의 가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교육 현장이었다. 그는 자녀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는 훈련을 했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에드워즈는 매일 저녁 가족과 함께 경건의 시간을 가졌으며, 자녀 한 명 한 명의 영적 상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아내 사라(Sarah Edwards) 역시 이 교육의 동반자였다. 가정은 교회와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신앙이 살아 숨 쉬는 첫 번째 선교지였다. 스톡브리지 인디언 사역에서도 에드워즈의 교육 철학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인디언 아이들에게 단순히 영어와 읽기를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이해와 대화를 통해 복음을 내면화하도록 돕는 교육을 실천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심겨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 미주 한인 2 세 교육에도 직접적인 통찰을 준다. 우리 자녀들은 두 언어, 두 문화 사이에 서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방향은 문화와 언어를 초월한다. 에드워즈는 또한 교육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자녀가 의사가 되든, 교사가 되든, 사업가가 되든 그 직업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명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종교개혁의 소명론(召命論, VocaFon)을 에드워즈가 교육 현장에서 구체화한 것이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좋은 직장’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소명’을 붙들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디아스포라 2 세의 이중 정체성은 약점이 아니라 소명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언어와 정서, 미국의 사고방식과 글로벌 감각을 동시에 품은 2 세는 어느 한 문화에만 속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명을 위해 준비된 존재일 수 있다. 에드워즈가 경계선의 사람 브레이너드를 통해 인디언 선교의 문을 열었듯, 하나님은 경계선 위에 선 2 세들을 통해 이 시대의 선교를 열어 가실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자녀에게 부담을 지우는 이야기가 아니다. 에드워즈의 교육관에서 핵심은 강요가 아니라 환경이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낼 때, 자녀는 그 삶을 보고 자란다. 설교보다 삶이 먼저였다. 논리보다 경험이 먼저였다. 에드워즈 자신이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매료된 사람이었고, 그 매력이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다. 부모의 신앙이 곧 자녀의 첫 번째 교과서였다. 오늘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부모들에게 이 메시지는 깊은 위로이자 도전이다. 우리는 자녀에게 더 좋은 환경,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이 땅에 왔다. 그 마음은 귀하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묻는다. 우리가 자녀에게 주고자 하는 가장 귀한 유산은 무엇인가. 학벌인가, 재산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이 의미 있다는 확신인가. 에드워즈의 11 명의 자녀들 중 많은 이들이 신학자, 목회자, 사회 지도자로 자랐다. 이것은 유전이나 환경만의 결과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최고의 선으로 삼는 가정의 분위기, 지성과 신앙을 함께 추구하는 삶의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의 헌신이 만들어 낸 열매였다. 한 가정의 신앙적 깊이는 한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의 역사를 형성한다. 결국 다음 세대를 세우는 것은 프로그램이나 커리큘럼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부모의 삶이, 자녀에게 전해지는 가장 강력한 선교신학이다. 에드워즈는 그것을 자신의 가정과 스톡브리지 교육 현장에서 몸소 증명했다. 선교는 먼 곳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 가정 안에서, 자녀와의 저녁 식탁에서, 잠들기 전 나누는 기도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는 것, 그것 자체가 선교이다.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에드워즈가 꿈꾸었던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은 가장 조용하고 가장 느린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강력한 선교의 방식일 수 있다. 우리는 자녀에게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을 세상에 보낸다. 그리고 그 사람을 세우는 첫 번째 자리는 교회도 학교도 아닌, 바로 우리의 가정이다. 에드워즈의 교육관은 오늘 우리에게 말한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그 작고 일상적인 헌신 안에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담겨 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도는 세대를 건너 열매를 맺는다. 가정은 디아스포라 선교의 첫 번째 현장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오늘도 하나님 나라는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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