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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추수감사절 특집 - 美 대통령의 추수감사절 역사

작성일 : 202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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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슨 대통령, 종교분리정책 내세워 지지거부
링컨대통령 시절에서야 공식적으로 정착
1. \"추수감사절\"이라는 제목의 신문 페이지에 실린 배너의 세부 모습. 토피카 주 저널 (토피카, 캔자스주), 1899년 11월 30일, 
2. 1789년 신문에 실린 \"선언문.\" 미국 공보 (뉴욕주 뉴욕주), 1789년 10월 7일, 
3. 1939년 신문에 실린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초상화. 초상화 아래에는 대통령이 종교적 의미 때문에 이 명절을 무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노갈레스 국제공항 (노갈레스, 애리조나주), 1939년 11월 25일, 
4. 1933년 신문 사진 1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초상화로 왼쪽 상단에, 오른쪽은 작가이자 편집자인 사라 조세핀 헤일의 초상화. \"그들은 우리의 추수감사절을 빼앗아 갔습니다\"라는 제목이 있고 사진과 제목 아래에는 눈 덮인 통나무집과 헛간의 풍경이 있으며 사람들이 집 문 앞에서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그의 옆에는 말과 수레에 매인 황소가 있다. 아래에는 \'추수감사절을 집에서 보내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5. 링컨 대통령이 1863년에 직접 쓴 추수감사절 선언문의 세부 이미지. 왼쪽 하단에 대통령 인장이 보입니다. 링컨의 선언문. 이브닝 스타 (워싱턴 D.C.), 1916년 11월 26일, 
6. “루즈벨트가 칠면조를 Cut했을 때,” 헨더슨 데일리 디스패치 (노스캐롤라이나주 헨더슨), 1933년 12월 4일, 
7. 1941년 신문에 실린 “추수감사절 날짜를 \'동결\'하는 법안에 서명함,” Evening Star (워싱턴 D.C.), 1941년 12월 27일, 
8. 1963년 신문에 실린 존 F. 케네디 대통령(왼쪽)이 목에 \"대통령님, 맛있게 드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칠면조(가운데) 옆에 서 있는 모습을 자세히 담은 사진. “터키, 대통령 사면 받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1963년 11월 20일.

11월 네번째 목요일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인들은 북미에서 영국 식민지가 만들어진 1주년을 기념해 이날을 국경일로 정해 축하해왔다. 


1620년 11월 11일, 청교도로 알려지게 된 102명의 정착민을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북미 해안에 도착했다. 그들은 당시 영국에서 처벌될 수 있는 범죄인 영국 국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기를 거부한 종교적 분리주의자들 중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


영국을 떠나 13년 전에 정착했던 버지니아 식민지 북쪽에 농촌 마을을 세우기로 결정한 그들은 착오로 북쪽으로 거의 1천 km 떨어진 곳에 도착했는데 오늘날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매사추세츠 주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플리머스 식민지를 설립했다.


북미에서의 그 첫 해는 매우 어려웠는데 ‘왐파노아’ 원주민의 도움으로 굶주리지는 않았지만 첫 두 달 이내에 3분의 2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1621년 가을은 많은 농작물을 거두었고 가을걷이가 끝날 때가 그들의 북미 도착 기념일과 겹치자 그들은 이 날을 축하했다.  살아남은 53명의 정착민들이 이웃인 90여명의 ‘왐파노아’ 원주민들과 함께 야생 가금류, 사슴 그리고 다양한 야채를 들며 잔치를 벌였다.


정착민들은 또 자신들이 살아남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진심 어린 기도를 드렸는데 그 것이 첫 Thanksgiving이 된 것이다. 


추수감사절은 오랫동안 백악관에서 기념되어 왔지만 , 감사를 표하는 것 외에도 대통령직은 이 명절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11월 넷째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기념하지만, 1941년 이전에는 추수감사절이 달력에 고정된 날짜가 아니라 대통령이 선포할 때마다 기념했다 .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1789년에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선포하여 11월 26일 목요일을 " 미국 국민을 위한 공적 추수감사절 "로 지정했는데 이는 새 헌법에 따라 추수감사절을 처음으로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것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은 1801년 추수감사절 선언을 거부하면서 이 전통을 지지하기를 거부했다. 제퍼슨에게 추수감사절을 지지하는 것은 국가가 후원하는 종교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추수감사절은 청교도 종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제퍼슨의 정치적 정적이었던 연방주의자들은 정교분리에 대한 그의 입장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여 미국인들에게 그가 무신론자이며 미국을 덜 경건하게 만들고 있다고 설득하려 했다.


1801년 11월, 코네티컷의 침례교 단체가 제퍼슨에게 주 헌법이 종교적 자유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그의 대통령 임기 동안 자신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이 단체에 보낸 초안 편지 에서 제퍼슨은 연방주의자들의 비난에 대해 금식이나 감사일을 선포하는 것을 종교적 표현으로 간주하며, 그것이 영국의 미국 식민지 지배의 잔재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퍼슨은 1779년 버지니아 주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추수감사절과 기도의 날을 선포한 적이 있었다. 훗날 제퍼슨은 주지사 시절에는 그렇게 할 의향이 있었지만, 대통령 시절에는 그러한 명절을 지지하면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또한 추수감사절은 연방 정부가 아닌 주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밝혔다.


1846년부터 1863년까지, 영향력 있는 『고디의 여인의 책(Godey's Lady's Book)』의 저자이자 편집자인 사라 조세파 헤일(Sarah Josepha Hale)은 의회와 다섯 명의 대통령( 테일러, 필모어, 피어스, 뷰캐넌, 링컨 )에게 추수감사절을 국가적인 연례 공휴일로 지정해 달라고 청원했다.


 헤일은 뉴잉글랜드 출신이었는데, 19세기 중반에는 풍년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것이 확립된 전통이 되었다. 마침내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 공휴일로 선포하면서 그녀의 청원이 성공했다. 링컨 대통령은 국가가 상처를 치유하고 " 평화, 조화, 평온, 그리고 연합 "을 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1865년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교회 대표단이 방문하기 전까지 추수감사절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을 잊었다고 한다. 그는 12월 첫째 주 목요일 (7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했다. 앤드류 존슨 대통령 이후로 추수감사절은 11월 말에 기념되고 있지만, 그 이전의 대통령들은 다른 달에도 추수감사절을 선포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1813년에 9월 9일을 , 1815년에는 3월 16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했다 .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처음 대통령에 취임했을 당시 , 추수감사절은 아직 고정된 명절이 아니었으며,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선언문을 발표하여 그 해 추수감사절 날짜를 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전까지는 매월 마지막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대공황으로 인해 이 전통은 지속되기 어려워 졌다 . 


루즈벨트 대통령의 첫 추수감사절은 11월 30일이었는데 목요일이 다섯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재계 지도자들은 통계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수감사절 이후에 쇼핑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추수감사절이 한 주 더 연장되면 중요한 매출 손실을 볼 것을 우려하면서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추수감사절을 한 주 앞당겨 11월 23일 목요일로 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그는 지난 70년간 이어져 온 전통을 따라  마지막 목요일로 유지하기 로 결정했다.


2년 후, 루즈벨트 대통령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지냈지만, 대중의 분노가 거세지자 의회는 1941년 12월 26일에 11월 넷째 목요일을 법정 공휴일 로 지정하는 법안(77 HJ Res. 41)을 통과시켜 모든 미국인이 통일된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게 되었다. 


1947년,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전국 양계·계란 위원회(Poultry and Egg National Board)가 주최한 최초의 생칠면조 시식회를 주재했고 , 이 행사는 백악관의 연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1963년부터 1967년까지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대통령에게 시식된 칠면조들은 목에 "대통령님, 맛있게 드세요"라고 적힌 표지판을 달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이 칠면조는 그냥 키우도록 두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칠면조를 살려주었지만, 백악관 칠면조를 사면하는 전통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칠면조에게 사면을 내린 데서 유래했다. 이는 당시 백악관 기자였던 노아 브룩스가 1865년 보도한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브룩스는 링컨 대통령의 아들 태드가 아버지에게 칠면조를 살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언급했다. 태드는 그 칠면조를 애완동물로 입양했다. 링컨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에는 이 칠면조를 살려주었지만,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에는 원래 이 칠면조를 사용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1989년 11월 14일이 되어서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이름 없는 칠면조에게 공식적으로 "대통령 사면"을 내렸는데,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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