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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권한보다 신뢰가 먼저다

작성일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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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직분자의권한은 행정 권력 아닌하나님께 맡겨진 청지기의 책임이다

며칠 전 대한민국 국회는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검찰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오랫동안 유지돼 온 검찰의 수사 구조를 뿌리부터 바꾸는 결정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시민사회의 반응은 엇갈린다.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개혁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수사 공백이 생기고 피해자 보호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번 개혁이 성공했는지는 결국 제도가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본 뒤 판단해야 한다. 다만 법안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분명히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이처럼 큰 폭의 제도 개편 요구가 나온 배경에는 오랜 세월 쌓인 국민의 불신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며 막강한 권한을 지닌 기관으로 자리해 왔다.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고 사회 정의를 세우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권력과의 유착, 표적수사, 과잉수사, 선택적 기소에 대한 비판 역시 끊이지 않았다. 검찰의 권한이 과연 공정하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쌓이면서, 개인의 양심과 선의에 기대기보다 제도적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기관이 더 많은 권한을 갖느냐가 아니다. 그 권한을 누가, 얼마나 책임 있게 행사하느냐가 핵심이다. 권한은 법과 제도가 부여하지만, 그 권한을 정당하게 만드는 것은 국민의 신뢰다. 신뢰는 직책이나 명령만으로 얻을 수 없다. 상대의 말을 듣고, 결정을 설명하며, 과정과 결과에 책임지는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생긴다.


개혁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작은 문제 제기가 계속 묵살되고, 비판이 불편한 목소리로 치부되며, 질문하는 사람을 공동체를 흔드는 존재로 몰아갈 때 불신은 자라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조직 내부의 자정 능력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쌓인 불신 끝에 개혁은 대화와 합의가 아니라 외부의 압력과 제도적 강제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교회도 이 질문에서 비켜설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이며, 목회자와 직분자가 가진 권한은 단순한 행정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진 청지기의 책임이다. 그렇다고 교회의 권위가 비판과 검증을 넘어선 절대적 권한이 될 수는 없다. 성경은 권위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권위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는 분명히 말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권위를 없애신 것이 아니라, 권위의 방향을 지배에서 섬김으로 돌려놓으신 것이다.


문제는 권한 그 자체보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공동체와의 소통을 잃을 때 생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도 교리의 차이보다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다. 성도들이 묻는 것은 결정의 내용만이 아니다. 왜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는지, 왜 자신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는지, 왜 질문이 불순종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묻는다.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는 공동체에서는 아무리 좋은 결정이라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


소통은 말을 많이 하는 기술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도 아니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먼저 듣고,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며, 그 결과를 책임지는 태도다. 때로는 잘못을 인정하고 결정을 바꾸는 용기까지 포함한다. 지도자가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공동체는 건강해진다. 비판을 적대감으로 여기지 않을 때 신뢰도 깊어진다.


세상은 법과 제도로 권력을 통제한다. 교회는 그보다 앞서 복음으로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만으로 교회의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세상보다 낮은 기준이 아니라 더 높은 윤리와 책임을 요구받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영적 권위는 직분의 이름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진실한 삶, 투명한 의사결정, 약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태도에서 나온다.


이번 검찰개혁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시간이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이 교회에 던지는 질문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는 직분 때문에 존중받는가, 아니면 신뢰할 만한 삶과 소통으로 존중받는가. 권한을 지키는 데 더 민감한가, 공동체의 아픔을 듣는 데 더 민감한가.


검찰이 국민의 깊은 신뢰를 받아왔다면 이처럼 거대한 개혁 요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도 다르지 않다. 작은 목소리를 오랫동안 외면하면 언젠가 더 큰 갈등과 마주하게 된다. 반대로 성도와 세상의 목소리를 겸손히 듣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본다면, 개혁은 외부에서 강요되는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는 성숙의 과정이 될 수 있다.


권한은 법과 제도가 줄 수 있다. 그러나 신뢰는 소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신뢰를 잃은 권위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이것이 오늘의 검찰개혁 논쟁이 한국 교회에 던지는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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