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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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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선교칼럼> 정 용 구 선교사 "교회를 떠난 게 아닌 찬양 속으로 들어온 요즘 청년들" 크리스천헤럴드2026.01.26
    최근 유튜브(YouTube), 틱톡(TikTok), 인스타그램(Instagram) 등 다양한 SNS 플랫폼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있다. 바로 ‘찬양’ 관련 영상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집회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부터, 이름이 알려진 찬양팀의 무대, 그리고 특별한 기획 없이 평범한 공간에서 드려지는 찬양까지 그 형태도 매우 다양하다.혼자서 조용히 찬양을 부르는 영상이 있는가 하면, 수만 명이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예배의 장면도 있다. 피아노나 기타, 드럼 하나로 시작된 찬양도 있고,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각 대륙의 다양한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의 구분 없이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찬양 영상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젊은이들이 찬양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나 정교한 연출이 없어도, 평범한 청년들이 모여 찬양이면 찬양, 워십댄스면 워십댄스를 진심으로 즐기며 드리는 모습이 영상 속에 가득하다. 오랫동안 찬양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찬양 사역자들과 교제해 왔기에, 이 영상들이 전문 사역자의 것인지, 아니면 평범한 교회 청년들의 찬양인지도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특히 중·고생들의 찬양 영상은 더욱 깊은 감동을 준다. 교복을 입은 채, 온 힘을 다해 찬양을 드리는 그 모습은 우리가 그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장면이자, 다음세대 신앙의 또 다른 얼굴이다.미국의 통계이긴 하지만, 최근 기독교 음악(Christian/Gospel) 장르의 스트리밍 성장률이 다른 주류 음악 장르에 비해 오히려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젊은 세대가 기독교 신앙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찬양은 더 이상 교회 안 예배 시간에만 머무는 음악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와 영적 체험을 담아내는 음악’, 즉 자기 정체성과 신앙 고백이 결합된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젊은 세대는 팟캐스트, 틱톡,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찬양을 듣고 공유한다. 교회 밖에서 소비된 찬양이 다시 교회공동체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 안에서의 예배의 틀과 다르게, 이들은 삶 속에서 듣는 워십, 워십 콘서트, 온라인 찬양 라이브, 유튜브와 SNS 등 다양한 공간에서 찬양을 경험해 왔다. 특히 찬양 가사 속에 담긴 솔직한 신앙 고백에 깊이 공감하며, 그 경험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이제 찬양은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참여하는 예배’가 되었고, 주일 예배 시간뿐 아니라 출퇴근길, 운동 시간, 공부하는 순간에도 찬양은 일상의 배경음악이자 신앙의 호흡으로 자리 잡고 있다.다음세대 선교를 이야기할 때, 선배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선교 유업을 다음 세대에게 잘 넘겨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미래세대의 청년들은 이미 ‘종목 자체가 바뀐 경기’를 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목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이전의 룰과 경기 방식만을 주장하며 고집한다면, 청년들과의 진정한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이제는 종목이 바뀐 경기장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분명한 선교의 목적을 향해 새로운 방식으로 달려가는 청년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격려하며 응원해야 할 때다. 오랫동안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이야기로 낙담했던 시간을 지나,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 속에서 청년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이제 이들이 만들어 갈 선교의 새로운 달음질이 기대된다. 기존의 언어로 이들을 설명하려 하기보다, 지금 그들이 가장 기쁘게 참여하고 있는 ‘찬양’과 ‘워십 댄스’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지를 청년들에게 묻고, 그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답하도록 돕는 시간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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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지상설교> 박헌성 목사 "먼저 문제를 해결하라" (마가복음 9:23-29) 크리스천헤럴드2026.01.26
    세상에는 참 귀한 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잃어버리면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그것이 세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이 있을 동안에 잘 살아야 합니다.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다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문제가 다 있습니다.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있고, 건강할 때도 있지만 병들어서 힘들 때도 있습니다. 교회 생활도 은혜 받을 때도 있지만 시험 들 때도 있습니다. 인생은 마치 시소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공할 때는 고난을 생각하고 겸손해야 됩니다. 인생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솔로몬 왕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공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고 했습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극히 작은 문제인데도 그 문제 때문에 힘들어서 넘어지는 사람, 낙심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음.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힘든 문제지만 그것을 아주 쉽게 이겨서 승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내 힘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내가 더 큰 은혜를 받아야 되고 더 큰 축복을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골프공을 보면은 홈이 파여 있습니다. 원래 골프공은 표면이 매끄러웠다 그래요. 매끄러우면 멀리 날아갈 줄 알았는데 이 홈이 파져 있어야지 멀리 가더라는 거예요.  옴폭 파인 걸 dimple이라고 하는데 즉 보조개죠. 그 골프공 하나에 대략 400개의 dimple이 있답니다. 그런데 이 보조개는 항상 웃어야 되잖아요. 사람들이 클럽으로 쳐대면 상처가 많이 나죠. 그런데 그 상처가 가 있어도 계속 웃고 있는 게 골프공인 거지. 웃고 있음으로 말미암아서 이게 공이 멀리 가는 거예요. 상처가 인생에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홈이 파져 있으므로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고 상처가 있으므로 더 성숙된 인간이 될 수 있고 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인생은 고난을 받을 때에 충격을 받을 때에 한없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때를 우리는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쓰리고 아픔의 때를 기쁨과 감사의 모습으로 바꾸어야 되고 시련의 걸림돌을 축복의 디딤돌로 만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어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참으로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첫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첫째는 부모 잘 만나야하고 둘째는 스승도 잘 만나야 되며 세번쨰는 배우자와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성도는 목회자를 잘 만나야 됩니다. 성도에게 귀한 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만남 중에는 선한 사마니아인처럼 좋은 만남도 있고 복된 만남도 있지만 그런가 하면 때로는 원치 않는 불행한 만남들도 있습니다. 말씀속의 병든 아이의 아버지는 원래 예수님 만나려 왔지만 대신 아홉 제자를 만났습니다. 그 제자들은 그의 문제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 만날 때에 내 인생의 문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만날 때 기적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성도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야 변화받을 수 있고 주님 만나야 성령 충만할 수 있고 주님 만나야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문제 해결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는 주님을 만나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축복이고 영광이라고 했음.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 만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만날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예수님 만날 때 놀라운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만날 때 죄인이 용서 안 받고 새 사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만났을 때에 이 가난인 한 사람, 부유한 사람 될 수 있음 예수님 만났을 때 병든 자, 치료받고 고침받아 건강한 사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만날 때에 마음의 소원 기도의 제목 응답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만 하면 그의 신비한 능력으로 영광과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예수님 만나면 시몬이 베드로가 됩니다. 예수님 만나면 사울이 바울됩니다. 예수님 만나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됩니다. 예수님 만나면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면 눈먼 소경이 눈을 뜨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 만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걷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냥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 신론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하나님이 누구시냐? 그 하나님을 잘 믿어야 된다는 분명하게 아멘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확실하게 믿으라는 것입니다.신앙은 단순해야 되요. 복잡하면 안 돼요. 우리가 왜 우리의 생활에 기적이 안 일어나느냐. 왜 우리의 생활에 능력이 안 일어나느냐. 믿음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여러분 우리 후손들에게도 잘 가르켜야 되잖아요.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궁무진합니다. 신앙은 양보하면 안 되는 거예요. 생명 걸고 믿어야 되는 거예요. 믿음 생활에는 프로가 돼야 돼요.두 소경이 예수님께 나와서 보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때 찾아온 소경에게 내가 너희에게 능히 일을 하리라고 너희가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소경들이 주여 우리가 믿나이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너의 믿음대로 될지니라. 소경이 눈 떴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력이 나타나는 거지요. 십자가는 더하기 표입니다. 내 인생에 예수 그리소가 더해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거예요.마지막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됩니다. 여기 나온 아홉 제자들이 더러운 귀신에 쫒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외쳤겠지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다 배웠어요. 보았어요. 자기들도 했습니다. 어제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안 되는 거예요. 오늘 나사렛 예수께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그래도 안 나가는 거예요. 그때 그래서 조용히 예수님께 묻는 거예요.예수님 왜 우리는 더러운 귀신을 능히 내쫓지 못합니까?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였어요.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 없다, 이 말이죠. 기도해야 된다. 이 말이에요..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눈물 흘릴때 궁휼히 여겨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돼요. 문제 있으신 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찾아가야 아무 소용없어요. 무시만 당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할 때 주님이 음성 들려줘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권세 가진 자들인거예요.  밖에서 보면은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다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지만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산 밑에 있는 아홉 제자들처럼 무능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신 쫓는 권세 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쫓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고 지금도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기도의 응답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기도의 응답은 허상이나 환상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징조요. 증거라 이 말이지. 그렇습니다.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복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어떤 문제도 해결하게 하고 주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거예요.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게 없죠. 믿음의 확신 가지고 해야 됩니다. 무엇보다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결국 기도하게 되죠. 응답과 축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갑니다. 기도는 고난을 영광으로 바꾸는 것이고. 기도는 사람을 바꾸고 기도는 환경을 바꾸고 기도는 하늘 문을 열게 하고 기도는 내 인생을 바꾸고 기도의 능력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새해에는 내 인생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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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1월에 드리는 감사 기도 크리스천헤럴드2026.01.26
    1 오늘이라는 하루를 선물로 받은 귀한 시간의 첫 시간을 주님과 독대하고 주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와 함께 주님의 마음을 알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2 신앙의 성숙은 우리의 소원대로 빠른 시간 안에 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빠름은 오히려 결과만 붙잡게 되는 위험이 있기에 하나님은 시간을 조절하십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깊은 마음인 줄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3 문제가 눈앞에 닥칠 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나 문제를 피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 하시니 이것을 알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느긋해질 수 있어 감사를 드립니다.4 나에게 주신 비전이 성취되기는커녕 오히려 불가능한 현실이 닥쳐올 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곤 합니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지는 때임을 뒤늦게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5 때로는 수많은 시간들을 기다릴 때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아 무의미함을 느끼곤 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은 나의 욕망을 무너뜨리고 그 무너짐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니 하나님은 이런 분이심을 자신 있게 소개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6 기다림이 아무리 오래가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곧 성장의 표가 되니 겉으로는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지만 내면의 힘은 탄탄해지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 앞에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7 겸손은 내가 초라하고 연약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함이나 병을 정말 고쳐 주시지 않고 약함 속에서 버티게 하심으로 성숙하게 하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8 원치 않는 실수로 마음이 아프고 낙심이 될 때도 실패를 통해 통증 속에서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해 주셔서 성장하게 하십니다. 실패가 겸손으로 옮겨지는 순간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며 주님의 도우심을 더 분명히 보게 되는 유익이 있으니 이 또한 복중에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9 하나님은 결과보다 동기를 더 중요시합니다. 동기를 보실 때마다 우리의 성장을 확인하십니다. 봉사와 헌신 속에서도 인정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동기를 점검하며 사역이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보실 때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찾기로 다짐하며 감사를 드립니다.10 우리를 성숙시켜 나가시는 하나님! 내 욕망과 비전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게 하시고 동기를 점검하여 순수함을 지켜 나가도록 성령의 조명이 항상 내게서 떠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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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여주봉 칼럼 - 성도들의 새해 소망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2025년을 지나며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에는 우리 주님의 생명의 빛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아가 모든 세상에 더 강하게 비춰지기를 소망하며,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의 은혜가 풍성하게 부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을 향한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하나님이 일하시는 주된 통로는 바로 교회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를 소중히 여기신다. 하지만 이 시대의 교회는 점점 침체되고 있고,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달갑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초대교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초대교회의 삶은 그 당시 로마 시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사회에서 외면 받는 자들을 돌보았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의사들조차 도망가는 난리통에도 환자들을 돌봤다. 또한 성적 타락이 극심한 그 시대에 정결한 삶을 추구했고, 도움을 청하는 이웃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선교적 삶을 살았고, 그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교회에 믿는 자들의 수가 더해졌다.지금 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이 가려진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에 주신 선교적 소명이다. 초대교회가 그랬듯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배운 대로 살고, 또 살면서 가르쳐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말씀을 올바로 배우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 수 없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교회의 소명과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다.이 시대의 모든 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강력하게 이뤄가시는 새 창조의 역사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고 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우리가 하는 일의 소명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우리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돌보시며 지금도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자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고, 우리의 일을 통해 온 세상에 그분의 사랑을 공급하신다. 우리의 일은 단순히 밥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자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공급의 통로다. 그렇기에, 교회와 성도가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일의 소명이 회복되는 것과 반드시 연결된다.이 시대에 적지 않은 성도들조차 일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같다. 전도나 봉사 등 교회에서 하는 일은 ‘주의 일’이라며 거룩하게 여기지만, 우리가 우리의 일터에서 하는 일은 세속적이고 저급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이 시대에 팽배하지만,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골로새서 3장에서는, 노예들이 주인을 위해 하는 일을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이자 이웃을 사랑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은 고귀한 소명이며,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일의 소명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탁월하게 일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한다. 새해에는 우리에게 주신 일의 소명이 그렇게 올바르게 회복되기를 소망한다.십자가 복음으로 교회뿐 아니라 사회 또한 회복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성도들의 경우 윤리적인 죄(간음, 거짓말, 살인, 도둑질 등)는 심각하게 여기지만 관계적인 죄(상대에 대한 후욕, 판단, 비방이나 상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거나 상대에게 마음을 닫고 좋지 않은 마음을 품는 것 등)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관계적인 죄도 윤리적인 죄 못지않게 심각한 죄들이다. 관계적인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교회 공동체에는 진정한 연합이 가능하지 않다. 말로는 연합을 외칠지 몰라도, 속으로는 이기적인 욕심대로 분열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과 세대와 정치적 성향을 따라 갈등과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를 적대시한다. 특히 정치가 우상이 돼 거기에 자기 인생의 전부를 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거기에 동의하고 분열시키는 일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지금은 참으로 어려운 시대인 것이 분명하지만, 주님은 이때에도 당신의 교회와 열방을 진정으로 회복하기 원하신다. 그 회복의 동력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뿐이며, 그 복음의 포괄적 성격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온갖 차별이 가득했던 로마 시대에 ‘반(反)문화 대안(代案)사회’로서 세워진 초대교회를 통해 그 시대가 바뀌었던 것처럼,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일터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를 변혁하고 구속해 나가기를 소망한다.“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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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정재영 칼럼 - 외면 받는 한국교회에 대한 소망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고 엔데믹으로 바뀐 지 3년째를 맞고 있다. 코로나 사태 당시에 종교 활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제약을 받았고 교회도 큰 어려움에 처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회복이 돼가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작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면 또는 비대면을 포함해서 출석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비율이 8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자 조사에서는 코로나 이전 대비 예배 및 활동에 참석하는 교인 수 변화는 감소했다는 응답이 30% 있었지만, 유지 55%, 증가 16%로 급격한 감소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교회학교가 줄었다는 응답이 43%로 가장 많아서 타격이 큰 것으로 나타났으나, 대부분의 활동에서 감소와 증가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예배 출석이나 교회 활동이 어느 정도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초에 있었던 한국리서치의 종교 조사 결과에서는 개신교 신자 비율이 20%로 불교(16%), 천주교(11%)보다 많아서 이 기관에서 조사를 시작한 2018년 이후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신자 수에서 세 종교 모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들의 이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신자의 유입과 종교 이탈이 서로 비슷한 수치를 차지한 결과이다. 문제는 세 종교 모두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보다 종교 인구 고령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체 성인 남녀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33%이지만, 천주교 신자의 50%, 개신교 신자의 44%, 불교 신자의 43%가 60세 이상이다. 종교인 10명 중 4~5명이 60세 이상인 셈으로, 전체 인구 기준 대비 10% 포인트 이상 고령 인구가 많다.종교 활동에 가장 열심인 종교는 개신교이다. 개신교 신자 중 종교 활동에 매주 참여하는 사람은 63%로 나타났다. 1년 전과 비교하면 8%포인트 늘었고, 천주교와 불교 등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매주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신자의 비율이 크게 높다. 개신교 신자의 77%가 종교 활동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특히 41%는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천주교 신자는 55%가 중요하다고 답해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불교 신자 중 종교 활동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35%에 그쳐 개신교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호감도가 낮은 개신교개신교가 신자 수나 종교 활동에서는 다른 종교를 앞섰지만, 호감도는 반대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이슬람교 순으로 호감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교와 천주교, 원불교의 호감도는 전년 대비 상승한 반면에 개신교 호감도는 오히려 소폭 낮아졌다. 개신교는 주요 종교 중에 유일하게 호감도가 감소했다.불교 호감도는 54.4점으로 전년 대비 3.1점 상승했다. 종교별 호감도를 측정한 2020년 이후 가장 높으며, 주요 종교 중에서 호감도가 가장 높다. 불교 호감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51점 이상)은 전체의 49%이며, 특히 76점 이상으로 매우 높은 호감도를 보인 사람이 전체의 26%로 적지 않았다. 반면 24점 이하로 매우 호감도가 낮은 사람은 전체의 16%로 적었다. 최근 불교가 MZ를 비롯해 좋은 인상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통계 조사로도 나타난 것이다.천주교 호감도는 52.7점으로 불교보다 조금 낮았지만, 보통 이상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호감도가 4.1점 높아졌고, 불교와 마찬가지로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호감도다. 천주교 호감도가 보통을 넘는 사람은 전체의 46%이며, 23%는 76점 이상의 매우 긍정적인 호감도를 보인다. 반면 24점 이하로 매우 부정적인 사람은 전체의 17%이다. 반면에 개신교 호감도는 34.7점으로, 불교 및 천주교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오히려 주요 종교 중 유일하게 호감도가 전년 대비 소폭(0.9점) 감소해, 지난 2년간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개신교 호감도가 51점 이상인 사람은 전체의 22%로 불교나 천주교의 절반 수준이며, 76점 이상 매우 긍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의 비율도 불교나 천주교보다 낮은 15%이다. 반면 24점 이하의 매우 낮은 호감도를 보인 사람은 전체의 46%로 불교나 천주교 대비 두 배 이상 많다.교세에서는 개신교와 비교할 수준이 되지 못하지만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호감도는 개신교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심지어 작년에 있었던 한 조사에서는 무종교인들의 종교 호감도에서 원불교가 개신교를 앞선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교회에 대한 소망사회 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각 교단에서 보고하는 교세 통계는 갈수록 신자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 개신교 신자 수가 일정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교인 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교회 밖 신자들 때문이다.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른바 가나안 신자 수가 최근에는 30%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신자 수가 20%가 된다고 해도 그 중에 6%는 가나안 신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전체 개신교 신자 중에 대략 10% 정도로 알려져 있는 이단 신자도 제외한다면 정통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는 전체 국민 가운데 12%에 불과하다는 뜻이다.앞에서 살펴본 개신교의 낮은 호감도를 감안하면 이 비율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칭찬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나쁜 인상을 준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삶의 모습이나 교회의 활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호감도가 낮은 종교에 관심을 갖거나 찾아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도하기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신자다움과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교회가 세상과는 다른 영적이고 도덕적인 공동체라는 것을 증명해 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더 배려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특히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하나님께 지으심 받은 그대로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더 책임감 있게 감당해야 한다. 이렇게 신자들이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이고 교회가 신앙공동체로서 참다운 모습을 보인다면 호감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될 것이다. 단순히 양적인 성장을 추구하기보다 영적 성숙을 통해서 신자다움과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새해에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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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
    [오피니언] 이영훈 컬럼 - 2026년, 믿음으로 건너야 할 약속의 땅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희망찬 2026년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수많은 사람이 비장한 각오로 새해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야심차게 세운 계획들조차 1월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무력감이 우리 신앙생활에도 침투해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 통독, 새벽 기도, 전도 등의 목표가 반복되는 일상과 영적 게으름 속에서 쉽게 무너지곤 한다. 그러나 2026년, 우리는 이 습관적인 패배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파도가 높고 거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여호수아와 같은 ‘절대 긍정의 믿음’이 필요하다.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범람하는 요단강과 견고한 여리고 성 앞에 서 있는 형국이다. 저출생과 인구 절벽, 양극화와 세대 갈등, 고물가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거대한 장벽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한국교회 또한 성장의 정체와 다음 세대의 이탈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정복해야 할 ‘현대의 가나안’이다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이 상황은 태산과도 같아 보인다. 그러나 절망의 끝자락이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작점이다. 모세가 떠난 후 두려움에 떨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승리를 전제로 한 하나님의 확증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갔다. 2026년을 승리의 해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여호수아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절대 기준’이 돼야 한다. 여호수아가 승리한 비결은 탁월한 전술이 아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라는 말씀에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유튜브와 SNS 등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세상의 소리에는 민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음성에는 무뎌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세상을 이길 힘은 정보가 아닌 믿음에 있다. 그리고 그 영적 근력은 오직 말씀으로 단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 1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성경을 펼쳐야 한다. 말씀이 우리 안에 채워질 때 비로소 담대함이 생겨나기 때문이다.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순종’으로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여호수아는 물이 마른 뒤에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닿는 순간, 흐르던 물이 멈춰 섰다(수 3:15~16). 기적은 계산하며 상황을 재는 자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두려워도 전도하고, 부담돼도 헌신하며, 힘들어도 먼저 용서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우리의 순종이 선행될 때 하나님은 비로소 길을 여신다.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의 돌’을 세워야 한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넌 후 열두 돌을 세워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했다. 우리가 쉽게 낙심하는 이유는 지난날 우리를 도우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잊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베풀어 주신 은혜, 고비마다 도우셨던 손길을 기억해야 한다. 그 감사의 기억들이 모여 2026년의 파도를 헤쳐 나갈 힘이 될 것이다.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수 1:5)라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여리고 성이 아무리 견고해 보일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2026년, 우리 앞에는 약속의 땅이 기다리고 있다.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무장하여 기적과 승리의 한 해, 그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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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신춘식 교수와 함께 하는 조나단 에드워즈 선교신학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다시 읽는 조나단 에드워즈>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정체성 회복의 신학 노루는 자연 속에서 생존력이 뛰어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민첩하고 경계심도 강하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건망증이다. 포식자의 위협을 느끼고 전력으로 도망치다가도, 잠시 후 자신이 왜 뛰었는지를 잊어버리고 다시 그 자리를 맴돌다 결국 잡아먹히곤 한다. 위험을 인식하고도 그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 건망증이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다. 단순한 동물의 습성처럼 보이지만, 이 모습은 오늘 우리의 삶과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 역시 두 세계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전개된다. 한국인의 문화적 뿌리를 지니고 있으나, 일상의 언어와 사회적 규범은 미국 사회(American society) 안에서 형성된다. 가정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영어로 사고하고 경쟁한다. 신앙의 언어와 생존의 언어가 교차하는 이 삶의 구조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 낯선 땅에서 나의 신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문화적 혼란을 넘어선다. 그것은 방향을 잃은 개인이 하나님께 던지는 근본적인 신앙의 물음이다. 미국 디아스포라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 차별(invisible discrimination), 성취에 대한 압박(pressure for achievement), 자녀 세대와의 문화적·신앙적 간극, 그리고 성공 여부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성과 중심의 정체성에 익숙해진다. “무엇을 이루었는가(what I have done)”가 “내가 누구인가(who I am)”를 대신하는 기준이 된다. 이 지점에서 18 세기 미국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오늘의 디아스포라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에드워즈가 살았던 시대 역시 사회적 전환과 종교적 혼란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환경이나 성취, 혹은 감정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 중심성(Godcenteredness) 위에서만 참된 자기 이해(true self-understanding)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에드워즈에게 신앙은 종교적 활동(religious practice)이나 개인적 체험(private experience)에 머물지 않았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 방식이었으며, 인간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정체성이었다. 이러한 이해는 그의 선교신학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에드워즈가 이해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특정 지역이나 사역을 넘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따라 인간을 세상 속으로 보내신다는 신학적 선언이다. 이 관점에서 디아스포라는 우연히 형성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 땅에 보내진 존재로 이해된다. 이민자의 삶이 불안정한 근본 원인은 외적 환경의 불확실성(external uncertainty)에만 있지 않다. 정체성의 토대가 흔들릴 때 삶 전체 역시 구조적으로 동요하게 된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위기를 정체성의 문제로 인식했으며, 그 회복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다시 세우는 삶, 곧 코람 데오(Coram Deo)의 삶으로 이해하였다. 하나님 중심의 정체성은 인간의 가치를 성취(achievement)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belonging to God)라는 사실에서 발견하게 한다. 다시 노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노루는 위험을 감지할 능력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위험을 인식하고도 그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을 잃는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잊는 순간, 삶은 방향을 잃고 세상의 흐름에 쉽게 휩쓸린다. 신앙의 정체성을 잃으면 마음은 분산되고, 목적을 상실한 삶은 어느새 세상의 기준에 붙잡히게 된다. 정체성은 영적 나침반(spiritual compass)이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 자리에 두셨는지를 기억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에드워즈의 신학은 오늘의 디아스포라에게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뿌리 없는 존재(rootless people)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뿌리를 둔 사람들(rooted in God)이다. 이 진리를 붙들 때 디아스포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계인이 아니라, 두 세계를 잇는 선교적 존재(missional being)로 다시 서게 된다. 정체성의 회복은 곧 사명의 회복이며, 그것이 오늘 미국 디아스포라 신앙이 다시 출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필자 약력 신춘식 교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을 연구하여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국제선교목회학박사(D.MinGM) 학위를, 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CPU)에서 선교학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현재 GMS 서부지부 지부장이며,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를 섬기는 한편, CPU 선교학과 박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 서울: CLC. 2025)을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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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국현목사의 신년사 <2026년 새해를 향한 기대>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사랑하는 크리스천 헤럴드 독자 여러분께, 2026 년 새해를 맞이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가정과 삶터 위에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한 해의 수고와 눈물, 그리고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인내를 주님께서 아십니다. 새해는 “더 빨리, 더 많이”가 아니라, “더 깊이, 더 행복하게” 주님 안에서 걸어가는 축복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오렌지카운티 교회 협의회 회장으로서, 2026 년을 시작하며 이 말씀을 함께 붙들고 싶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이 말씀은 아주 다정하게,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평강은 단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상황이 흔들려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내일이 불확실해 보여도 소망을 놓지 않게 됩니다. 2026 년에는 우리 안에 이런 평강이 더 굳게 자리 잡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는 안정과 번영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진짜 번영은 “내 손에 무엇이 더 많아지는 것”만이 아니라, “내 삶에 하나님이 더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면 가정이 새로워지고, 관계가 회복되고, 공동체가 다시 따뜻해집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깊이 들어오면, 복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모든 이에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저는 새해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첫째, 오렌지카운티의 교회들이 더 하나 되게 하소서. 교단과 배경을 넘어,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서로를 축복하고 지역사회를 섬기게 하소서. 교회가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이웃을 품는 “따뜻한 집”이 되게 하소서. 둘째, 이 지역사회에 평강과 안정이 임하게 하소서. 경제적 어려움, 가정의 갈등, 청년들의 불안, 외로움과 우울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닿게 하소서. 우리의 작은 친절과 섬김이 누군가의 한 해를 살리는 은혜가 되게 하소서. 셋째,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선교지까지 복음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소서.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는 시대일수록, 교회는 더욱 “화해의 길”을 보여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국경을 넘어가고, 기도와 선교가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 특별히 선교지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에게 새 힘을 주시고, 복음의 문을 넓게 열어 주소서. 독자 여러분, 2026 년은 “내가 잘해내는 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임재가 여러분의 집에 머물고, 예수님의 복음이 여러분의 말과 선택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살아나며, 지역사회가 건강해지고,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해, 주님 안에서 평강과 소망, 안정과 축복,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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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남진석 원장의 신년사 <2026년을 기대하며>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2026년은 육십갑자 기준으로 ‘병오(丙午)년’입니다. '병(丙)'은 오행 중 '불'을, 그리고 색깔로는 '붉은색'을 상징하며, '오(午)'는 십이지 동물 중에서 '말'을 의미하니 ‘붉은 말의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주는 상징성은 활달함, 추진력, 강인함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동양의 육십갑자가 한해의 운명을 결정 짖는 원천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해의 상징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를 차용하여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 2026년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여러 가지 이슈들이 많습니다. 우선 대한민국에서는 ‘노란 봉투법, 검찰청 폐지’등 현재까지 지켜왔던 사회적 기본질서와 가치의 틀이 완전히 새로운 틀로 바뀌는 원년이 됩니다.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노란 봉투법으로 인한 경영권 유지 리스크가 커지며 우량기업이 앞다투어 해외로 이전하고, 검찰청 폐지로 인하여 사회악에 대한 즉각적인 퇴치와 처리속도가 지연되고 이에 따른 사회안전망의 부실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은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책임은 오롯이 유권자인 국민의 몫이 될 것입니다. 2026년 11월에는 미국의 중간선거가 있습니다. 상하원의 상당수 그리고 주지사의 70%가 새롭게 선출되는 해입니다. 미국의 정치 지형의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종횡무진 좌충우돌 연일 큰 국제적 정치 뉴스를 만들어 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기회가 될지 위기가 될지를 가름하는 인류사적 중간선거가 될 전망입니다.  2026년에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중 하나인 FIFA 월드컵 대회가 북미 3개국에서 열리게 됩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열리는 이번 월드컵은 FIFA체제 이후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월드컵이 됩니다. 종전 32개국에서 무려 16개국이 더 추가된 48개국이 우승을 놓고 열전을 펼치게 됩니다. 'North America 2026 FIFA World Cup'이라 불리어지는 이번 대회의 공식 명칭은 ‘United 2026’입니다. 23개의 경기장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미국에서만 17개의 경기장에서 치루어집니다. 사실상 미국 월드컵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때마침 대한민국 뿐만아니라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손흥민 선수가 LAFC에 소속되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역 국가대표선수로 마지막 출전하는 월드컵대회가 자신이 활동하는 안방에서 치루어지기에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기대를 하게 됩니다. 북미에 거주하는 동포사회를 벌써 부터 설레이게 하는 큰 이벤트가 되고 있습니다.  2026년 세계 선교와 교회를 생각해 봅니다.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확실성의 위협을 내포하고 있는 가운데 인적 물적 선교자원의 감소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이들의 탈 교회는 여전히 심화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세계로의 이주민 및 제3세계 난민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선교의 기회는 꾸준히 증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적 과업을 충분히 감당하기 위하여 상당한 선교적 비용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지역교회의 재정 동원 능력이 저하되고 있기에 선교 현장에서 선교재정을 위한 자급자족을 위한 비즈니스 기반을 세워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미국남침례교(SBC) 2024년 연례 교회보고서(ACP)에 의하면 성도들의 숫자에 있어서는 미미한 감소세 임에도 불구하고 공예배, 주일학교, 제자훈련 등의 출석율은 현저하게 증가하였으며, 약세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북동부나 서부에서 성도들의 수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청년대학생 층의 성장세도 교회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우려되는 문제들의 산적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준비된 개인과 교회 그리고 기관을 통하여 일하시고 역사하고 계심을 우리는 목도하여 왔습니다. 2026년 새해에도 하나님께서 각성도들과 교회들과 기관들을 통하여 얼마나 놀라운 역사와 은총을 베풀어 주실지 큰 기대가 됩니다. 염려보다는 기대와 확신으로 승리하는 한해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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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19 김광근 -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라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하나님을 알도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로마서 1장 21절우리는 종종 죄를 지었을 때 "몰라서 그랬다"라고 변명하지만. 성경은 만물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기에 핑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않는 것, 즉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는 '관계적인 거부'가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우리는 '익숙함'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을 빼앗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녀나 건강, 자존심과 같은 우상이 하나님의 보좌를 차지하면 우리의 마음은 어두워지고 영적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나 실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2026년, 아는 신앙' 을 넘어 '사는 신앙'이 되기 위해 우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적극적인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숨 쉬는 것, 건강한 것, 그리고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은 당연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섬김의 대상입니다. 불평이 나오려 할 때마다 감사의 고백으로 그 자리를 채우며, 올 한 해 하나님과 더욱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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