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오피니언] 민경엽 목사의 성탄 메시지 - 참 빛으로 찾아온 성탄절
페이지 정보
본문
민 경 엽 목사(나침반교회 담임)

어떤 죄수가 감옥에 갇혀서 조그마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한없이 오랫동안 내다보고 있다. 그의 등 뒤로는 짙은 어둠뿐이다. 감옥이 힘든 이유는 그 죄수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어둠이 너무나 깊기 때문이다. 온통 어둠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 이 죄수의 등에서 두꺼운 어둠이 그를 짓누르고 있다. 그러니 이 죄수가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창문은 그의 유일한 희망이고, 그렇게 들어오는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는 언젠가 자기에게도 그 빛으로 가득한 삶이 주어지기를 바라며 창문 밖의 세상을 찬란한 빛을 응시한다. 현재는 우크라이나 땅이 된 폴타바에서 태어난 19세기 러시아의 사실주의 작가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야로센코의 <죄수>라는 그림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신영복 교수는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서 20년 2개월을 살았다. 그가 수감 생활 10년이 되었을 때 어떤 재소자가 자살하였다. 운동시간에 주운 유리조각으로 동맥을 끊은 것이다. 그도 20년 넘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끊임없이 죽고 싶었다. 그러나 자살하지 않았다. 그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를 그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밝혔다.
그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 겨울 햇볕은 비스듬히 벽을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서 최대의 크기가 되었다가 맞은편 벽을 타고 창밖으로 나갔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다. 신문지만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 그는 따스함을 느끼면서 살아야 할 이유를 거기에서 찾았다.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작은 햇볕이라도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받지 못했을 선물이 아닌가. 그래서 살았다.
교회는 성탄절 전의 4주간을 대림절로 지킨다. 대림절은 Advent라고 한다. 라틴어의 adventus에서 온 말로 로마 황제와 같은 아주 소중한 분의 방문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교회가 대림절을 지키는 이유는 초림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First Advent)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함이지만 재림하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Second Advent)를 사모하며 기다린다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은 한 아기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흑암 가운데 있는 인생들에게 큰 빛이 비치게 하셨다. 그 아기는 세상 사람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셨다. 그래서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담당할 수 있으시다. 그 분은 기묘자로 인생의 딜레마를 해결해 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능력 있게 모든 문제를 푸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영원의 세계까지 이끄시며, 평강의 왕으로 온전한 평화를 세상에 주시는 분이시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한 아기가 가진 생명, 영생을 사람들의 참 빛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빛이 임하자 노예 상인이었던 존 뉴톤 같은 악한 사람도 개과천선하여 목사가 되고, 세계인이 가장 애창하는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하였다.
이 빛이 임하여 존 뉴톤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20세기의 기독교 지성 C. S. 루이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묘지에 묻히며 자신의 묘비명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태양이 떠오른 것을 믿듯이 기독교를 믿는다.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다른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태양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날에도 떠오르지만 먹구름으로 가려 볼 수 없는 날에도 떠오른다. 그것이 기독교이고,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 성탄절 사건이다. 인간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만 참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다 내려지는 축복을 경험한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참된 빛을 통하여 다른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데 있다. 보되 올바르게 보고 균형 있게 보고 참되게 본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권세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우리의 상상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텐트를 친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 삶의 마당에 텐트를 치고 들어오신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셔서 잠깐 들렀다 가시는 분이 아니라 삶의 한 복판에 들어오셔서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 우리의 아픔 속에 머무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눈물 속에 동행하셔서 빛으로 가득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세상의 기준과 달리 누추한 우리 인생에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에게는 은혜로 오시고, 방황하는 인생에게는 진리로 오셔서 참된 용기와 지혜로 살게 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마라나타(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성도가 되게 하신다.
성탄의 계절을 맞아 야로센코의 죄수의 심정으로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한다. 그 빛이 비춰주지 않으면 아무런 희망도 없는 인생임을 갈수록 깨닫는다. 나야말로 그 죄수다!
- 이전글이창남목사의 성탄 메시지 "다시 성탄의 기쁨으로 경배하는 교회" 25.12.20
- 다음글이영선 목사의 성탄 메시지 - 성탄, 마음이 다시 향할 때 믿음은 이어진다 25.12.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