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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연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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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인도를 마치고 내려가기 전에 찬양대 지휘자가 사용할 보면대 하나를 항상 두고 내려간다. 찬양대 앞에 지휘자가 서는 자리에 보면대를 놓되, 잊지 않고 반대로 돌려놓고 내려간다. 지휘자가 지휘 궤적을 확보하기 위해 받침이 없는 위쪽을 자신 앞으로 돌려놓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 해온 시간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발견되는 것들이 있다. 특이하고 독특한 습관들도 함께 한 시간이 오래되면 자연스럽게 눈에 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습관들이 있다. 한두 번 보아서는 잘 모르지만 자주 보면 알게 된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서로의 성향과 습관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누군가를 깊이 알아가는 과정도 같다. 친해지기 전에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기에 다 보이지 않지만 가까워지고 편해지면, 그제서야 서로 몰랐던 부분들까지 알게 된다. 좋은 면도, 부족한 면도 알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해 깊은 이해가 생긴다. 좋은 일과 슬픈 일을 함께 겪으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비로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신학교를 다닐 때 이런 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일이 있었다. 수강했던 헬라어 교수가 들려준 자신의 경험담이었다. 그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을 때 사도바울에 대한 논문을 썼다고 한다. 자료도 많이 찾고 열심히 분석해서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바울의 삶과 신학에 대해 좋은 논문을 쓰기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학과 지도교수가 여간 깐깐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면밀히 따지는지, 논문을 검증받는 날이면 늘 긴장되었다고 한다. 이 지도교수 때문에 아예 논문주제를 바꿔 다른 교수를 찾아간 학생들도 있었고, 그래도 버티고 끝까지 남은 학생들 중에는 지도교수의 사무실에서 나올 때 분노에 차 있거나, 얼굴이 빨개져서 나오는 모습을 본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보다 바울신학에 대해서는 정평이 있는 교수라서 어려워도 지도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그동안 준비한 논문을 발표할 차례여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지도교수를 찾아 간 그는 질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것에 대해 철저히 준비를 하고 갔다고 한다. 따질 것으로 보이는 것들은 더더욱 꼼꼼하게 준비를 하고, 되려 반문할 질문들도 준비를 하는 등, 각오를 단단히 하고 찾아갔었다고 한다.
철저한 준비가 헛되지 않게 모든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했고, 지도교수가 날카롭게 던진 의문점들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연구 내용을 입증하며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고 한다. 어떤 말에도 지지 않고 모두 능숙하게 답변을 하자,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고 고개만 설레설레 젓는 지도 교수를 보며 마음속으로 승리의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바로 그때, 지도교수가 내뱉은 한마디에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참담함을 금치 못하며 방을 나섰다고 한다. 지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 맞는 말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은 바울답지 않다.” 지도교수의 모든 질문에 대해 대답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말한마디에는 그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지도교수가 자신보다 바울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수십 년간 바울을 연구해온 지도교수, 그는 바울의 신학만 아니라, 그의 어법, 필체, 성격, 습관 등등, 그의 글에서 숨소리조차 느낄 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박사과정 논문을 쓰기 시작한 그가 바울을 연구한지는 불과 1-2년 남짓. 수십 년간 바울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함께 지내온 사람에게 이제 바울과 동행한지 몇 해 안된 사람이 바울에 대해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도 같다. 오랜 세월동안 주님과 동행한 나날들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이다. 깊은 교제 속에서 쌓아온 주님에 대한 경험과 지식, 주를 아는 마음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귀하다. 주님과의 오랜 사귐은 이처럼 신앙의 성숙으로, 연륜으로 남는 것이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베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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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영 석 목사찬양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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