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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목사의 자리를 지키려 했을 뿐입니다” 반세기 강단을 지킨 목회자, 박헌성 목사

작성일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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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한 교회를 섬기며 '오직 주님, 오직 교회, 오직 성도'를 실천한 목회의 기록

지난 6월 7일 LA열린문교회에는 오랜 시간 한 강단을 지켜온 목회자를 향한 감사가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 1993년 교회를 개척한 이후 33년 동안 담임목사로 섬긴 박헌성 목사가 원로목사로 추대되는 자리였다. 성도들에게는 목회자의 은퇴를 기념하는 예배이면서도, 한 교회와 함께 걸어온 시간을 돌아보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오늘날 한인교회는 세대교체와 신뢰 회복, 다음세대 감소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목회 환경도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박헌성 원로목사는 평생 변하지 않는 원칙 하나를 붙들었다. "오직 주님, 오직 교회, 오직 성도."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그의 목회를 관통한 삶의 기준이었다.


그는 총회장과 신학교 총장, 세계선교 지도자 등 여러 직책을 맡았지만, 자신의 목회를 설명할 때는 언제나 "목사의 자리를 지키려 했다"는 말부터 꺼낸다.


"무엇을 잘하려고 하기보다 목사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짧은 한마디지만, 그 안에는 반세기 목회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오늘날 교회의 어려움 가운데 상당수가 목회자에게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신념으로 목회의 길을 걸었다. 영적인 리더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평생 영력과 지력, 체력을 함께 준비했다. 새벽을 여는 기도는 하루를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고, 꾸준한 연구와 독서는 강단을 지탱하는 힘이 됐다. 긴 목회의 여정을 위해 자기관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이를 "목사의 폼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말하는 폼은 권위가 아니라 목회자의 품격과 경건, 그리고 삶의 일관성을 의미한다.


1981년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이민목회의 현실도 몸소 경험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경제적 어려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외로움 속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교회를 삶의 버팀목으로 삼던 시절이었다. 박 원로목사는 이민목회의 본질을 사람을 돌보는 일에서 찾았다.


"주님의 뜨거운 심장으로 힘들고 어려운 이민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목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강단보다 병원으로 먼저 향하는 일이 많았다. 해외 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집보다 병상을 찾았고, 아픈 성도와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방문하는 일을 우선했다. "가난하고 불쌍하고 소외된 사람을 먼저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는 믿음은 목회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실천으로 이어졌다.


1993년 문을 연 LA열린문교회 역시 이런 목회 철학 위에서 세워졌다. 당시 남가주 한인사회에는 많은 이민교회가 생겨나고 있었지만, 박 원로목사는 규모보다 말씀과 기도, 제자훈련을 중심에 두었다. 새벽기도와 성경교육, 선교를 교회의 기둥으로 삼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도 꾸준히 힘을 기울였다. 그는 교회의 성장을 자신의 성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장로들과 성도들을 만나 행복한 목회를 했다"며 모든 공을 함께 교회를 세운 성도들에게 돌린다.


교회 사역과 함께 평생 이어온 또 하나의 사명은 신학교육이다. 1987년 국제개혁대학교·신학대학원(IRUS) 교수로 시작한 그는 부총장을 거쳐 총장에 취임했고, 지금까지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는 신학교가 단순히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할 목회자를 세우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IRUS는 미국 교육기관의 인준을 받은 정규 신학교로, 목회학석사(M.Div.) 과정 졸업생들이 교단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미군 군목 지원 과정과 목사후보생 전액 장학금 제도, 영어권 사역자를 위한 English Track도 운영한다. 변화하는 선교 환경에 맞춰 온라인 교육과 국제 학생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그의 관심은 교회와 학교를 넘어 세계선교로 이어졌다. LA열린문교회는 과테말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운영하며 교육선교를 펼치고 있고, 브라질과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서도 선교 협력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한 뒤에는 WMS 세계선교회와 한국과 미국의 여러 선교기관을 연결하며 세계 곳곳의 선교사와 이민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그는 선교는 후원금만 보내는 일이 아니라 직접 현장을 찾아 함께 기도하고 함께 짐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교회와 미주 한인교회가 모두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 대해서도 그는 지나친 비관을 경계한다.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다시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고, 말씀과 기도 위에 바로 선다면 회복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또한 이민교회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교단을 넘어 협력하는 연합의 정신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종교개혁 정신 역시 오늘의 교회가 붙들어야 할 기준으로 제시한다. 시대의 흐름을 쫓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교회와 사회를 섬기는 것이 개혁신학의 정신이며, 목회자는 세상 속에서 진리를 전하는 선지자적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세기가 넘는 목회와 교육, 선교의 길을 돌아보며 그는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담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총회장도, 신학교 총장도, 세계선교 지도자도 그의 삶을 설명하는 이름일 수 있다. 그러나 박헌성 원로목사가 끝내 붙들고 싶은 이름은 따로 있었다. 평생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품으며, 강단을 지켜온 한 목회자의 삶은 결국 그 한마디로 귀결된다.  "주님이 함께한 사람."


박헌성 원로목사 주요 약력 : 총신대학교(B.A.) 졸업

미국 개혁장로회 신학대학원(M.Div.)

리폼드신학대학원(Th.M.)

트리니티신학대학원(Ph.D.)

1993년 LA열린문교회 개척

IRUS 국제개혁대학교·신학대학원 총장

제32회 세계예수교장로회(GAWPC) 총회장

WMS 세계선교회 회장 역임

세계복음신문 창간·발행인

『최고의 은혜』 등 30여 권의 저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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